말씀의 은혜/신앙,시사,목양 칼럼

참다운 성령의 역사

에바다. 2012. 3. 2. 13:33

       참다운 성령의 역사    

                    


   김용희목사

   (고흥녹동제일교회)


마리아(Mary)는 ‘높다’는 의미를 지닌 단어로 히브리어 마리암, 아람어 미루얌, 헬라어 마루얌의 음역이다. 신약성경에는 적어도 6명 정도의 여자들에게 그 이름이 사용되고 있다. 보성 모 교회에서 박 모씨 부부가 세 자녀를 굶기고 때려 숨지게 한 사건으로 세상이 들썩이고 있다. 박씨 부부는 자녀들에게서 귀신을 쫓기 위해 때려야 한다는 장 모씨의 지시에 따라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


이들 부부는 성경 잠언 24장 13∼14절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라는 구절을 실행에 옮겼다. 또한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라는 성경 구절에 따라 허리띠와 파리채를 이용해 자녀들을 9일 동안 39대씩 4회에 걸쳐 폭행했다. 어처구니없는 성경의 적용이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주신 성경 말씀이 사람을 죽이는 말씀으로 둔갑하고 말았다.


모든 사람을 충격에 휩싸이게 만든 이번 사건에 대해 자식을 키우는 부모로서 너무 가슴이 아프다. 향후 이 같은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 지시한 장씨나 박씨 부부는 모두 영적인 지도자 역할을 하겠다는 자들이다. 이번 보성 3자녀 사건은 기독교 신앙생활에서 일어나는 왜곡과 오해를 여실히 드러내 준다. 오늘날 영적으로 혼탁한 한국 교회의 한 단면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무분별한 ‘성령 운동’으로 영적 혼란에 빠져 있다. 근본 문제는 메시아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교인들의 궁극적인 관심이 무엇이냐에 따라 메시아관이 결정된다. 과거 유대인들처럼 많은 교인들이 ‘십자가의 메시아’가 아니라 큰 능력을 행하는 ‘영광의 메시아’를 원한다. 여전히 예수를 구세주로 고백하지만 그들이 믿고 섬기는 대상은 더 이상 성경이 말하는 십자가의 예수는 아니다. 그것은 그들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욕망이 형상화된 우상이다. 현대 교인들은 그들의 옛 자아와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는 메시아는 도외시한 채 빵 문제, 질병과 고통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그들을 번영하게 해 줄 메시아는 대환영한다. 이렇듯 세속화된 교인들의 욕망에 의해 변질된 메시아관이 한국 교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한국 교회에 만연한 성령 운동의 심각한 문제점은 십자가의 메시아에서 일탈한 운동이라는 점이다. 성령 운동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그 분명한 포커스를 맞추지 않으면 복음은 현저히 왜곡되고 성령의 능력은 구원의 목적을 이루기보다 인간의 종교적 야망을 성취하기 위해 남용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한국 교회에 초자연적인 현상들, 즉 기적과 병 고침, 방언과 예언의 은사들은 넘쳐난다. 그러나 한국 교회에 가장 시급한 것은 십자가의 능력으로 인해 거룩한 새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이런 거룩함을 상실했기에 한국 교회는 대사회적인 영향력을 상실하고 복음의 빛을 가리는 심각한 위기를 맞이한 것이다. 이번 보성 사건은 영적으로 혼탁한 시대에 나타난 한 단면이라고 생각된다.


신자가 성경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을 옳게 이해하고 그 방법에 순종으로 반응하는 일, 곧 신앙생활의 본질 자체가 성령 사역의 목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선교적으로 혹은 목회적으로 벽에 부딪힌 한계 상황을 성령 운동으로 극복해 보려는 성장의 욕구들이 여러 불건전한 신비주의를 조장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불건전한 신비주의가 건강한 교회의 성장에 이바지한 적은 거의 없다. 모든 경건은 모든 신비이다. 그리고 그 경건은 분명한 성경과 신학을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의 은혜로 인한 것이다. 성경적인 메시아관의 확립과 그에 따른 신자의 거룩한 삶이 우리 사회를 웃게 할 것이다. 십자가의 능력으로 인해 우리 옛사람이 처리되고 거룩한 새사람으로 변화되기를 기대한다.


-기독신보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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