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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실을 맺지 않는 가지는 제거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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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
예수님은 자신을 '참 포도나무'로. 제자들을 '가지'로 비유하셨다. 이는 곧 있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해 제자들과 이별해야 하는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을 정리하면서 주신 일종의 유언과 같은 말씀이다. 앞으로 제쟈들은 예수님 없이 스스로 생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포도나무의 비유를 통해 '내 안에 거하라'는 분명하고도 확실한 방향을 주셨다.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요15:2
예수님의 포도나무 비유에는 두 종류의 서로 다른 가지가 나온다. 과실을 맺지 못하는 가지와 과실을 맺는 가지가 그것이다. '농부'이신 하나님은 과실을 맺지 못하는 가지를 '제거해 버리시고', 과실을 맺는 가지는 '깨끗하게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 비유에서 우리는 포도나무의 '가지'에 해당하는데. 그렇다면 과연 어떤 가지에 속할까? 과실을 잘 맺는 가지일까, 아니면 과실을 맺지 못하는 가지일가? 세마나를 하면서 이런 질문을 던지면 많은 분들이 대답하기를 주저한다. 어떤 분은
"지금은 과실을 잘 맺지 못하지만 잘 맺기 위해 노력하는 가지" 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그러나 본문에는 이런 제3의 가지는 없다. 단지 과실을 맺지 못하는 가지와 과실을 맺는 가지가 있을 뿐이다.
하나님이 동일한 질문을 하신다면 과연 "나는 과실을 잘 맺는 가지입니다" 라고 당당히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도리까? 어쩌면 "지금은 과실을 잘 맺지 못하지만 잘 맺기위해 노력하고 있다" 는 답이 가장 솔직한 대답맇 듯 싶다.
그러나 본문 말씀에 기초해서 보면, 이런 가지 역시 과실을 맺지 못하는 가지에 속할 뿐이다. 우리는 과실을 맺지 못하는 가지이므로 하나님이 싹둑 '제거해 버리실' 것이다. 정말로 농부이신 하나님은 이런 가지들을 가차없이 제거하실까?
그렇다면 제대로 붙어 있을, 제대로 남아날 가지가 있을까?
나는 대학교 1학년 때 선교단체에서 처음 신앙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선교단체에서 군대처람 절도 있는 신앙 훈련을 받으면서도 늘 요한복음 15장 2절 말씀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과실을 맺지 못하는 가지는 제거해 버린다고 하셨는데, 하나님이 나를 제거해 버리면 어떻게 하지? 혹시 벌써 제거해 버리신 건 아닐까?"
이 말씀은 참 포도나무의 비유 속에 나오는 우명한 말씀이지만, 말씀의 의미를 곰곰이 묵상하고 나 자신에게 적용해 본다면 그리 간단히 넘어갈 수 있는 말씀이 아니다. 여차하면 무심 시한 심판의 두려움에 떨게할 수 있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제거해 버린다'는 '들어주신다'
요한복음 15장 2절 말씀은 성서시대 이스라엘 포도 농사법에서 나온 독특한 표현이다. 포도나무의 특징은 길게 뻗어나가는 가지에 있다. 오늘날에는 'Y'자 철사를 박아 놓기 때문에 포도나무 가지는 철사를 따라 올라가면서 원없이 자랄 수 있다.
그러나 성서시대 이스라엘의 포도 재배법은 오늘날과 전혀 달랐다. 당시에는 철사가 귀했으므로 포도 가지는 뱀처럼 땅을 기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땅에 닿은 포도 가지는 열매를 제대로 맺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기'에는 땅에 닿은 부분이 습기로 ㅇ니해 썩고, '건기'에는 자체적인 뿌리를 내리다 보니 본뿌리에서 영양분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서시대 농부들은 땅바닥에 닿아 과실을 맺지 못하는 가지를 적절하게 처리해 주어야 했다. 이때 방법은 가지를 '들어 주어' 밑에 돌을 괴어 놓음으로써 과실을 잘 맺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반면 과실을 잘 맺는 가지는 잔 가지를 쳐주는 전정작업을
통해 자잘한 포도 열매가 아니라 극상품의 포도 열매를 맺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처럼 성서시대 포도 농사에서 농부가 신경 써야 할 두 가지 작업은, 땅바닥에 닿아 과시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밑에 돌을 괴어 '들어 주고' 과실을 맺는 가지는 깨끗하게 '잔가지 치기'를 해 주어 극상품의 포도를 맺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말 성경에는 과실을 맺지 못하는 가디를 '제거해 버린다'고 번역되어 있는데, 이는 성서시대 포도 농사법을 알지 못한 데서 비롯된 잘못된 번역이다. 물론영어 성경에도 'cut off' 또는 'take away'로 번역해 우리말 성경과 똑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여기서 '제거해 버린다'는 말은 당연히 '들어 주신다'로 고쳐야 한다. 잔가지를 쳐주며 제거해 버리는 가지는 오히려 과실을 잘 맺는 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영어 성경과 우리말 성경은 이 부분에서 오역을 할 것일까? 이는 '제거해 버린다' 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어 속에 그 해답이 있다. 헬라어
'아이로' 는 '제거해 버린다'(take away) 와 '들어주다'(life up)의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다. 우리말 '눈'이 라늘에서 내리는 '눈'(snow)과 사람 얼굴에 있는 '눈'(eye)의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는 것과 간은 이치다. 헬라어 '아이로'가 어떤 뜻을 갖느냐는
문맥을 통해서 구별할 수밖에 없는데, 성서시대 포도 농사법을 알지 못하면 여한복음 15장 2절 말씀을 단순히 '제거해 버린다'로 오역할 수 있다. 이것이 아무리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어휘 실력이 뛰아나도 성경 변역에 오루가 발생할 수 있는 이유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번역상의 오류가 말씀을 전혀 다른 의미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데 있다. 땅바닥에 닿아 과실을 맺지 못하는 가지를 '제거해 버린다'고 해석하면 무시무시한 심판으로 이해되지만.\, '들어 주신다'고 해석하면 연약한 우리들을
위로해 주는 놀라운 권면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포도나무의 가지들이다. 때로 과실을 맺지 못할 수도 있지만, 상황과 결과에 따라 그렇게 요동하지 않아도 된다. 농부이신 하나님께서 과실을 맺지 못하는 가지는 들어 주시고, 잘 맺는 가지는
잔가지를 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최상급의 포도 열매를 맺도록 부지런히 일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지에 불과한 우리들은 그저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 있기만 하면 된다. 아무리 힘들어도 가룟 유다처럼 은혜의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지만 않으면
된다. 가지가 좋은 과실을 맺ㄷ는 최상의 방법은 그저 '진득하게 버티기' 이다.
-열린다 성경 _절기 이야기 에서 옮김-
♡주의 사랑으로 오늘도 행복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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