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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얼굴을 씻어야 하나?
어떤 학자가 아무리 공부하여도
유대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의 랍비를 찾아갔습니다.
"저는 유대인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학자입니다.
제가 유대인에 관한 책을 많이 읽고 연구했지만
유대인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 수 없습니다.
탈무드를 공부해야 비로소
유대인에 대해 잘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 탈무드를 가르쳐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하고 머리를 숙였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그런데 내가 보기에 당신은
탈무드를 공부할 자격이 없어요."하고
잘라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어떤 일이 있어도
탈무드를 꼭 배우고 싶습니다.
제가 탈무드를 배울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시험해 주세요."하고
막무가내로 랍비에게 졸랐습니다.
랍비는 할 수 없다는 듯이
"그러면 어디 간단한 시험을 해봅시다.
내가 문제를 낼 테니 한번 풀어 보시오." 하고
문제를 냈습니다.
"어느 날 두 소년이 함께 굴뚝 청소를 했어요.
굴뚝 청소를 마친 소년들이 밖으로 나왔는데
한 소년의 얼굴은 그을음이 전혀 묻지 않았는데
다른 소년은 새까맣게 묻어서 나왔소.
당신 생각에는 두 소년 중 누가 세수를 할 것 같소?"
학자는 너무 쉬운 문제라 얼른 대답했습니다.
"그야 얼굴이 새까맣게 된 소년이지요."
랍비는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다는 듯이
"그것 보시오. 당신은 역시
탈무드를 공부할 자격이 없어요."
그러자 학자는 항의했습니다.
"왜 제 대답이 틀렸습니까?"
랍비는 냉정한 표정을 지어며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얼굴이 새까맣게 된
소년은 얼굴이 깨끗한 소년을 보고
'아, 내 얼굴도 저렇게 깨끗하겠구나' 생각할 것이고
얼굴이 깨끗한 소년은 새까맣게 된 소년의 얼굴을 보고는
'아, 내 얼굴도 저렇게 새까맣겠구나'하고
생각하게 될 테니까
얼굴 씻을 소년은 누군지 명확하지 않는가?"
랍비의 말을 들은 학자는 속으로 무릎을 치며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그래서 랍비가 학자에게 질문을 했는데
전과 똑 같은 질문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바르게 대답하게나.
두 소년이 함께 굴뚝 청소를 했는데
한 소년은 깨끗한 얼굴로,
다른 한 소년은 새까만 얼굴로 왔다네.
그러면 두 소년 중에서 어느 소년이 얼굴을 씻겠는가?"
학자는 답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만만하게 대답했습니다.
"물론 얼굴이 깨끗한 소년이 얼굴을 씻겠지요."
학자의 대답을 들은 랍비는
그 보란 듯이 쌀쌀하게 말했습니다.
“역시 당신은 자격이 없어."
학자는 매우 실망하며 랍비에게 물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세수는 어떤 소년이 한단 말입니까?"
랍비가 말했다.
"두 소년이 모두 씻어야지. 함께 굴뚝 청소를 했는데
어찌하여 한 소년은 깨끗한 얼굴로,
다른 소년은 더러운 얼굴로 나올 수 있겠는가?
이 이야기에서 얼른 알 수 있는 것은
유대인들의 사고방식은
주입식적인 지식을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주입식으로는 다양한 관점에서의
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주어진 문제풀이에 급급하기보다
문제 자체에 대해서도 시선을 돌려
문제 자체의 타당성을 검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인만큼 교육을 중시하는 민족도 드물지만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언저리를 헤매는 딱한 모습을 바라보며
지식의 근본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잠1:7]
-남산편지에서 -
♡주의 사랑으로 오늘도 행복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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