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은혜/교회법·특별기고

미국장로교회는 어떻게 청빙하는가

에바다. 2012. 2. 18. 10:59

             미국장로교회는 어떻게 청빙하는가
                  청빙위원에는 다양한 사람 참여해 차별 배제해야
 

   한국교회는 청빙실패로 인해서 교회가 시험에 든다. 최근 분규가 발생한 교회를 보면 대다수가 청빙실패로 인한 것이다. 성경과 미국장로교회의 청빙사례를 보면 어떻게 목회자를 청빙해야하는 지 잘 드러난다. 우리나라는 추천형이 36.8%, 공모형이 31.6%로 공모형보다는 추천형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경의 청빙방법
 

   성경에 보면 사역자를 청빙하는 방법이 두 가지가 나온다. 하나는 인위적인 방법으로 청빙하려다 실패한 사례이고, 다른 하나는 신앙적인 방법으로 청빙한 사례이다. 전자는 사무엘의 청빙 방법이다. 사무엘의 청빙 방법은 외모와 관행만 보고 청빙하는 방식이다. 하나님이 차기 왕이 될 사람을 선택해서 기름을 부으라는 말에 사무엘은 이새의 집안에 가서 일단 외모가 출중하고 장자인 사람을 선택하면 무난하리라고 생각했다. 사무엘은 이새의 장자인 엘리압을 선택했지만 하나님은 외모를 보고 판단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 결국 사무엘은 인간적인 방법을 갖고 차기 왕을 청빙하려다 실패한 것이다.
 

   그러나 초대교회 당시, 가룟 유다 대신 예수의 제자를 선택하는 방법은 신앙적인 청빙 방법 이었다. 그들은 먼저 기도를 계속했다. 최종 남은 두 명을 놓고 막판까지 기도하면서 제비를 뽑았던 것이다. 결국 맛디아가 선택이 되었다. 성경은 물론 그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지만, 무리 없이 사역을 잘 했으리라 생각이 든다. 하나님이 원하지 않았거나 비윤리적이며 비신앙적인 행각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의 새로운 제자가 잘 보강이 되어 초대교회는 복음사역을 잘 실천할 수 있었다.
 

   오늘의 목사 청빙 방법도 다양하고 가지각색이다. 신앙적으로 기도하면서 막판까지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청빙하는 교회도 있는가 하면, 대부분은 인위성을 띠고 청빙한다. 대체로 청빙하는 교회를 보면 100여 통이나 되는 이력서를 보고 추린 다음, 설교 테이프를 듣고, 공동의회 시 최종 후보자에 대해 성도들이 결정하게끔 한다. 최종후보자까지는 청빙위원들이 결정한다.
 

   몇 가지 기준이 있다. 대교회 출신 목사, 좋은 학력, 출신성분, 추천인, 목회 성과, 성품, 건강, 설교, 가능하면 전임자의 목회 스타일과 유사한 자 등일 것이다. 100여 명 이상 되는 이력서의 변별력은 쉽지 않기 때문에, 이력서를 추려 3~4명으로 압축하고, 인터뷰를 하고, 마지막으로 설교를 한번 시켜 성도들이 선택하게끔 한다.
 

   미국장로교회의 청빙방법
 

   미국은 어떻게 목사를 청빙하는지 알아보자. 미장로교는 목사를 청빙할 시, 우선 총회의 정보를 조사한다. 한 교회가 신임 목사를 청빙하고자 한다면 교회청빙위원회는 노회와 총회에 교회정보(Church Imformation Form)를 제출하게 되어있다. 물론 교회 자리를 찾고자 하는 개인도 개인신상정보(Person Imformation Form)를 총회에 제출하게 되어있다.
 

   그러면 교회는 개인신상정보를 보고 적절한 사람을 선택해서 충분히 인터뷰를 해서 결정하고, 개인도 자신이 바라고 원하는 교회를 지원하는 것이다. 누구의 입김이 들어갈 여지가 없다. 교회나 지원자나 당사자들이 직접 선택하는 것이다. 이처럼 미국 장로교회는 PIF(개인신상정보)를 보고 몇 사람을 선택해서 인터뷰해서 그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습득한다. 우선 일차적인 것은 목회 경력, 학력, 인성, 적응능력 등을 고려한다.
 

   미국교회 청빙방식에 있어 중요한 것은 설교가 아니다. 그들은 설교 이외에 그 사람의 인격이나 됨됨이, 이전 목회활동, 대외봉사, 학력 등을 이력서와 노회 총무 등 다양한 루트를 통해서 충분히 점검한다. 그래서 미장로교는 한사람의 부목사나 담임목사를 선출하는데 있어서 상당한 시간을 요구한다.
 

   우리나라의 교회 상황은 자신의 목회 스타일과 교회가 요구하는 목회자와 상관없이 일단 목회자를 찾는 광고가 나오면 목회 스타일의 적합성이라는 선택의 여지없이 지원부터 하고 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나중에 서로 불협화음이 하나씩 우러나오게 되어 교회나 목회자가 시험에 들기도 한다. 설교도 한두 번은 잘 할 수 있고, 인격이나 생활, 목회 능력도 6개월은 감출 수 있다. 6개월 이후가 되면 하나씩 진실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 교회는 조급한 생각을 갖고, 한 달 정도의 한정된 시간을 정해 놓지는 않는다. 그들은 서두르지 않는다. 대신 담임목사가 없는 경우를 대신해서 목사 부재 시 오는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해 헌법에 나와 있는 대로 중간 임시 목사(Interim pastor)를 6개월에서 1년 동안 계약제로 고용한다. 이는 담임목사에 대한 충분한 검증과정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청빙위원에는 다양한 사람 참여해 차별 배제해야
 

   청빙위원에 있어서도 반드시 여성과 장애인, 소수민족을 포함시켜야 한다. 장로나 남성들만 청빙위원이 되면 안된다. 이는 명백히 직분과 성의 차별이다. 그래서 노회는 청빙위원회의 위원이 제대로 구성되었는지 그 절차를 세밀하게 파악하게 되어있다. 우리나라 교회는 간혹 청빙위원들이 장로들만 구성이 되어 있어 일반 평신도를 제외하고 밀실공천을 하는 예가 종종 발생한다. 이는 차별이다. 이제까지 이런 식으로 청빙된 교회는 몸살을 앓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 교회도 청빙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우리나라 청빙 문화는 겉으로는 신문에 광고하였지만 실제로는 미리 내정하여 특정인 이외에 다른 지원자들을 들러리 서게끔 하는 예가 비일비재하다. 들러리 청빙 방식은 다른 지원자들과 성도들, 하나님을 속이는 '기만 청빙 방식'이다. 투명하지 않은 청빙 방법이다. 이외에도 소수 특권의식을 가진 당회원들로만 구성된 청빙위원들이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지원자들을  몇명 추려서 공동의회 투표에 내미는 방식이 있다. 청빙에 있어서 평신도들이 배제된 집단전제적인 청빙 방식이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전근대적이며 관습화된 밀실 공천적인 청빙 문화의 산실이다.
 

   장로들로만 구성된 집단전제적 청빙은 인위적인 청빙방법이다. 이러한 예는 영락교회(통합)에서 이미 나타났다. 이외에도 강력한 전임 리더자에 의한 일인전제 청빙 방식도 인위적이다. 광성교회(통합), 소망교회(통합), 충현교회(합동), 강북제일교회는 좋은 사례이다. 
 

   이런 식의 비성경적인 청빙 방식은 항시 강한 허리케인과 같은 후폭풍을 동반하거나 카트리나를 준비시키는 것이다. 특히 민주정치와 평등정치에 토대를 둔 장로교는 다시 수직구조의 사제위주인 감독정치나 교황정치로 가는 반종교개혁적 행위를 일삼는 것이다. 칼빈, 루터의 종교개혁은 수직에서 수평으로, 사제에서 평신도로, 일인제사장에서 만인제사장으로, 독재에서 민주로, 밀실에서 광명으로 향하는 개혁이었다.
 

   대교회가 모범을 보여야
 

   한국 교회는 이제 바뀌어야 한다. 목회를 성공(?)한 대교회 목사라고 해서 사무엘식 청빙의 뒤를 따라서는 안된다. 그러한 관행화된 대교회 목사들의 일인 전제적 청빙 방식과 당회원들만의 집단전제적 청빙방식이 한국 교회를 삼류로 만들었다. 더는 그러한 방식이 한국교회 청빙의 규준이고 척도이며 표준일 수 없다. 당회 역시 외형적으로는 민주적인 대의형식을 띠었지만 내면적으로는 집단독재나 집단전제의 역할을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제직회는 재정을 위한 봉사기관이고, 당회는 행정과 치리를 위한 봉사기관이다.
 

   당회는 하나님과 교인들을 위한 봉사기관이지 교회의 우두머리이며 권위적인 집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며 눈에 보이는 현실적 주인은 교인들이기 때문이다. 장로교는 장로가 주인이 아니라 평신도가 주인이며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가 주인이어야 한다. 평신도가 배제된 당회원들만의 잔치는 교회 내 차별주의와 특권주의로 빠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도는 평신도를 통하여 드러나고, 평신도의 뜻은 당회원들을 통하여 당회에서 대의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권층이 청빙위원을 하거나 후임자를 임명하거나 교회를 주도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기도하는 선지자 사무엘도 청빙에 실패했는데 일반 사람들이 어찌 이력서와 한 번의 설교만 듣고 청빙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부자 상속 예찬론자들은 "뭐니뭐니해도 부자상속이 제일 낫다"고 정당성을 갖는 것이다.
 

   청빙문화 정착은 총회가 앞장서야
 

   따라서 밀실공천이나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인 무질서한 청빙 문화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총회가 나서야 한다. 우선 청빙과 관련한 법제정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청빙위원들이 성별과 직분, 연령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이 구성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법제정 이외에 총회는 목회자(부교역자 포함)를 요구하는 교회의 정보와 교회를 요구하는 목회 지원자들의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총회가 중재 역할을 하면 그만큼 청빙 문화가 밀실공천이나 지연, 학연 등으로 묶인 특정 장로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지지 않고 서로 요구하는 당사자들끼리 직접 해결할 수 있는 투명하고 정직하게 되는 문화가 자리잡게 될 것이다.
 

   목사의 청빙은 총회의 법제정, 노회의 감시, 당회의 투명성과 민주성, 성도들과 지원 목사의 영성이 지평 융합이 될 때 아름답게 진행될 수 있다. 아름다운 청빙이 되기 위하여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투명과 정직성, 평등성, 밀실 공천배제, 성차별 직분차별 배제, 다양한 청빙위원들 구성, 진실성, 투표, 기도뿐이다.
 

   사람들이 최대한 인위적인 방식과 정치적인 스타일을 배제한 청빙의 도구의 역할을 하면 청빙의 주인인 하나님이 그 교회에 적합한 목회자를 알아서 보내줄 것이다. 오늘날의 문제는 청빙의 도구와 주인이 바뀐 것이다. 인위적인 힘을 배제하는 것이 하나님이 개입할 수 있는 가장 신앙적인 청빙방식이 아닐까? 시대가 혼탁해지면서 진리와 비진리가 모호해지고,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분간하기 어려울수록, 성경으로 돌아가서 사무엘식 청빙방식을 배제하고 맛디아를 청빙한 초대교인들의 청빙방식을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떨까? 현실적으로는 미국장로교회처럼 다양한 정보를 총회가 보관하고 있어서 총회가 청빙에 대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2012.2.16. 로앤처치 / 황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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