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은혜/신앙,시사,목양 칼럼

사랑의 적금 통장을 불리며 살아가자

에바다. 2012. 2. 21. 11:43

           사랑의 적금 통장을 불리며 살아가자    


   김병태 목사

   (성천 교회)


사람의 뇌 속에서 여러 가지 뇌파가 나온다. 깨어있는 동안에는 몸에 해로운 베타파가 주로 나온다. 그런데 밤에 잠을 자는 동안에는 몸에 이로운 알파파가 나온다. 그래서 몸이 아플 때 평소보다 잠을 더 자야 몸을 회복시키는 알파파가 충분히 생성된다.


그런데 깨어있을 때도 몸에 좋은 알파파가 나오는 경우가 있다. 웃을 때와 사랑할 때다. 이렇듯 웃고 사랑하는 삶은 좋은 것이다. 다른 것은 다 감출 수 있어도 사랑하는 것은 감출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랑을 하면 알파파가 가득 차서 표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인생이란 무엇인가? 좋은 대학을 나와서 일류 기업에 들어가 출세를 하는 것? 남들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것? 그러나 그것을 성공이라고 말할 순 없다. 어떻게 살면 행복할까? 남과 비교해서 매사에 비교 우위의 삶을 누리면 행복할까? 좋은 배우자를 만나고, 좋은 직장을 다니고, 자식들이 다른 아이들보다 잘 되면 행복할까?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행복을 확보해 주는 것은 아니다.


나는 말하고 싶다. 사랑이야말로 행복과 성공의 열쇠라고.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아가는 한 부부가 있었다. 서로에게 무엇 하나 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넘쳐 흐르는 사랑이 있었다. 어느 날 행복하게 살아가던 이들 부부에게 불행의 그림자가 덮쳐오고야 말았다. 사랑하는 아내가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게 된 것이다.


그렇게 누워있는 아내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남편은 자신이 너무나 비참하게 느껴졌다. 아내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주고 싶은 남편은 여러 날을 골똘히 생각했다. 마침내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그토록 사랑하는 아내를 속이기로 한 것이다.


남편은 이웃집에서 인삼 한 뿌리를 구했다. 그리고 아내를 감쪽같이 속였다. “여보, 내가 어제 꿈을 꾸었는데, 산삼을 보았어. 그런데 그곳을 찾아가 보았더니 거기에 정말로 산삼이 있었지 뭐요. 당신을 위해 보내준 것 같소.”


남편은 인삼을 아내에게 건네주었다. 그러자 아내는 말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남편이 건네 준 인삼의 잔뿌리까지 꼭꼭 씹어 먹었다. 남편은 자신의 거짓말까지도 철석같이 믿어주는 아내가 너무나 고마워 눈물을 흘렸다.


인삼을 먹은 아내의 병세가 놀랍게도 금세 좋아지기 시작했다. 아내가 회복하는 모습을 본 남편은 너무 기뻤다. 그런데 마음 한 구석에 아내를 속였다는 죄책감에 있다.


아내의 건강이 회복된 어느 날, 남편은 아내에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여보, 정말 미안하오. 내가 당신에게 준 것은 사실 산삼이 아니라 인삼이라오. 건강이 악화되는 당신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너무 마음이 아파서 이웃에게서 빌린 것이라오. 날 용서해 주시오.”


그러자 아내는 미소를 지으면서 조용하게 말했다. “여보, 너무너무 고마워요. 저는 인삼을 먹은 것도, 산삼을 먹은 것도 아니에요. 당신의 사랑을 먹었을 뿐이에요.”


사람들은 사랑 때문에 울고 웃는다. 인생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사랑이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어둠이 물러간다. 그래서 바울은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말했다. 사랑은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힘을 갖고 있다.


사람들은 이것저것을 하려고 한다. 그런데 사랑을 빼놓고 하려는 사람이 있다. 주님을 사랑해서 봉사를 해도 사랑을 빼놓아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봉사를 하면서도 짜증나고 불평한다. 형제를 섬기면서도 사랑의 동기에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되돌려 받고 싶은 마음이 앞서 오히려 상처를 받는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우선적인 것은 바로 사랑이다.


인도의 성자 간디는 자신의 조국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배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온 정성을 다해 노력했다. 어느 날 간디에게 한 젊은이가 찾아와서 말했다. “선생님, 저도 인도의 독립운동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그때 간디가 그 젊은이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여보게 젊은이! 그대는 무슨 이유로 독립운동에 몸을 바치려 하는가?”


이 질문에 젊은이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예, 선생님. 저는 우리 백성들을 짓밟는 영국 사람들이 너무나 미워서 독립운동에 이 한 몸을 바치려합니다.”


젊은이의 대답을 들은 간디는 대답했다. “그렇다면 자네는 독립운동에 헌신할 자격이 아직은 준비되지를 않았네. 가서 생각을 깊이 해보고, 영국 사람들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인도 사람을 사랑하듯이 영국 사람도 사랑하게 되거든 그때 독립운동을 하러 오게. 영국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으로 독립운동을 하게 되면 인도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를 못하는 것일세. 독립운동이야말로 인도 사람을 사랑하듯이 영국 사람도 역시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일세.”


말이 그렇지. 어디 그리 쉬운 일이던가? 누구나 사랑하고 싶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사랑할 마음이 우러나오지 않는 사람도 많다. 나에게 무관심한 사람. 왠지 얄미운 사람. 더구나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를 비난하고 험담하는 사람. 괜스레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만드는 사람. 그런 이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기억하자. 사랑만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사실을. 우리 인생에 남는 것은 사랑뿐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처럼 어떤 일이 있어도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한다.


어느 대통령이 작은 도시를 방문했다. 그 도시는 공업화된 이후에 가장 잘사는 도시가 되었다. 그런데 사람들 사이에 정이 없기로 소문이 났다. 대통령은 자신을 환영하러 나온 군중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도시에는 사랑하는 제 아들이 살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으니 저를 봐서라도 제발 제 자식을 사랑으로 대해 주십시오.”


그런데 대통령은 자기 아들이 몇 살인지, 어느 학교를 다니는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그 도시 사람들은 길에서 만나는 모든 아이들에게 밝은 얼굴로 다정하게 대했다. 누가 대통령의 아이인지 모르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어른들끼리도 서로 웃음띤 얼굴로 인사를 나누게 되어 사랑이 넘치는 곳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대통령은 자신의 아들이 누구인지 끝내 밝히지 않았다. 어느 날 도시 책임자가 대통령에게 말했다. “대통령님 자녀를 찾다보니 우리 도시가 이렇게 달라졌습니다. 이제 자녀분이 누구인지 말씀하실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그 자녀분을 데리고 가셔야 할 때가 된 것 같은데요.”


그러자 대통령이 웃으며 대답했다. “누구를 데리고 간단 말인가? 내가 이 도시에 남겨놓은 것은 바로 사랑일세. 사랑이 이 도시에 그토록 아름답게 살고 있는데 내가 감히 누구를 데려가겠는가?”


사람들이 왜 상처 속에서 사는가? 사랑이 식어지기 때문이다. 사랑은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눈을 아름답게 만든다. 아름다운 눈을 가진 사람에게는 상대방의 흠이나 결점이 보이지 않는다. 단점도 장점처럼 보인다. 그러나 미움은 매사를 나쁜 눈으로 보게 만든다. 별것 아닌 것을 트집 잡는다. 눈 감아 줄 수 있는 문제도 사람들 앞에 드러내어 인격을 모독한다. 문제 많은 세상보다 더 심각한 것은 사랑이 없는 사람들의 눈이다. 비판보다 더 위대한 힘은 바로 사랑이다.


사랑이 없는 인생은 풀 한 포기 없는 사막과 같다. 그러나 사랑이야말로 황량한 사막에 오아시스와 같다. 사랑은 인생을 풍요롭게 만든다. 생기를 주고 의미와 보람을 준다. 멋진 인생을 꿈꾸는 당신은 이제 사랑의 적금 통장을 불려나가야 한다.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아름답고 멋진 결심이 있다. “덜 미워하고 더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크리스찬투데이 사설칼럼-


♡주의 사랑으로 오늘도 행복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