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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칼럼] 마가 요한이 순교한 알렉산드리아

에바다. 2012. 9. 12. 11:24

[성지순례 칼럼] 마가 요한이 순교한 알렉산드리아



▲김용규 목사
령천 교회 중동 선교사
크리스찬 해피투어 성지플레너
성지 가이드 북 저자


알렉산드리아는 참 매력적인 도시이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의 역사를 모르면 너무나 무미건조한 도시이기도 하다. 그리스계 프톨레미우스 왕조 시대의 톨레미 2세는 안정된 내정과 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이집트를 다시 한 번 지중해에서 가장 번성한 국가로 만들었다.


톨레미 2세는 강력한 해군을 길러 동부 지중해에서 가장 우월한 위치를 확보했으며, 홍해 안에 여러 항구를 세우고 전략상 요충지에 함대를 파견해 완벽하게 홍해를 지배했다. 이 분이 고대 인류 문명의 7대 불가사의라고 하는 파로스 등대를 세운 주인공이다.


나일강으로부터 홍해로 통하는 운하를 개통해 이집트를 동서양 무역의 중계지로 만들었고, 파욤 지역에 새로운 경작지를 개발하고 그리스인은 이주시켜, 그들로 하여금 포도와 올리브를 집중적으로 재배하도록 하였다.



▲카이로 마가 기념교회.


외국과의 통상으로 생긴 국부를 가지고 알렉산드리아가 세계 문화의 중심지가 되는 데 쏟아 부었다. 거대한 박물관과 도서관을 세웠고, 많은 나라의 예술가와 작가, 학자들을 알렉산드리아로 끌어들여 그곳에서 활동하도록 권장한 것이다. 그러나 빛나는 업적과는 달리 백성들에게는 과중한 세금을 거두어 들였기 때문에 탐욕스런 군주로 알려져 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바로스 등대의 설계자는 크니두스 출신의 건축가 소스트라테스라고 알려져 있다. 알렉산드리아에 살았던 그리스 수학자 유클리드와 동시대 인물로, 아마도 유클리드 기하학의 원리를 등대에 적용하였다. 톨레미 1세 때 건설이 시작된 등대는 그의 아들 톨레미 2세에 이르러 완성 되었다.


뛰어난 건축가인 그는 등대의 부지로 가장 적합한 장소가 파로스 섬의 동쪽 끝이라고 결정하고, 주전 279년 완성된 이 등대는 섬의 이름을 따라 파로스의 등대란 이름이 붙었다. 등대의 규모는 높이가 약 130m의 삼층탑으로, 빛나는 백색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고 전하고 있다. 그리고 그 부속실만 해도 약 300개가 있었다고 한다. 외부에서는 3층탑의 형태였으나, 내부에서 올라가면 16층이나 되어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 등대 꼭대기에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우뚝 서 있었다고 하며 꼭대기에 등불이 있어 밤에는 멀리 50km까지 떨어져 있는 배들이 등대를 볼 수 있었고, 낮에는 거대한 거울이 달려 있어 거울에 반사되는 불빛을 볼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태양광선을 모아 반사시키면 바다에 떠 있는 배들을 태울 수도 있었다고 한다.


이 거울은 세공한 유리나 반투명한 돌로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일층에는 최소한 30개나 되는 반인 반어의 해신상과 태양의 진로에 따라 손가락이 움직이는 신기한 동상이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등대가 완성되어갈 무렵, 톨레미 2세로부터 ‘제왕 포톨레미, 항해의 수호신을 위해 이 등대를 만들다’라는 명문을 대리석으로 새겨 넣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소스트라테스는 명령을 그대로 따랐고, 왕은 자신의 이름이 새겨 있는 것을 보고는 후세 사람들이 자신을 길이길이 기억하리라 생각하면서 무척 기뻐했을 것이다. 세월이 흐른 뒤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명문이 완전히 허물어져 버린 것이다. 대리석에 새겨 넣은 것이 어떻게 허물어졌을 까? 허물어진 명문 뒤에 숨어 있던 다를 글귀가 나타난 것이다.


그 내용은 “크니두스의 테크시프리노스의 아들 소스트라테스, 항해의 수호신을 위해 이 등대를 만들다”라는 글귀이다. 왕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던 건축가 소스트라테스는 명문을 만들면서 회반죽에 대리석 가루를 입힌 뒤 글자를 새겼고, 그 밑에 있는 진짜 대리석에다 자신의 이름을 몰래 새겨 넣은 것이다. 등대를 만든 사람은 왕이 아니라 바로 자기라는 사실을 후대에 알리고 싶었던 것일 것이다.


그로부터 천 년 후 7세기 중엽에 알렉산드리아는 아랍인들에게 정복당한다. 그 후 알렉산드리아는 바다 건너 콘스탄티노플과 통상 경쟁을 하는 유력한 항구가 된 것이다. 알렉산드리아가 이슬람 세계의 문화와 상업의 중심지였다면 콘스탄티노플은 비잔틴 제국의 문화와 상업의 중심지다. 파로스의 등대 때문에 콘스탄티노풀은 통상 경쟁에서 한 걸음 뒤지고 열세를 면치 못하였다. 고민을 하던 비잔틴 황제는 다마스커스의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프인 알 -왈리드에서 사신을 보냈다. 그러면서 사신에게 한 가지 밀명을 내렸다.


사신으로 하여금 다마스커스에 도착하자마자 파로스의 등대 밑에 톨레미 왕조가 숨겨놓은 엄청난 보화가 묻혀 있다는 소문을 퍼뜨리라는 밀명이다. 이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다마스커스 칼리프는 보물에 그만 눈이 어두워, 등대를 철거하고 보물을 발굴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철거가 반쯤 진행되었을 때에야 칼리프는 자기가 속았음을 깨닫고, 철거를 중단시키고, 다시 옛 모습으로 등대를 복구하려고 애를 썼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만한 기술을 지닌 사람도 찾을 수 없었지만, 거대한 거울이 이미 산산조각 나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보물에 대한 욕심이 알렉산드리아로 들어오는 배들을 인도하던 파로스의 등대를 없애버리게 된 것이다.


-크리스천 투데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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