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의 미학
과장하는 것을 좋아하는 어떤 아이가 있었다
아이가 떠벌릴 때마다 어머니는
꾸짖으며 과장하지 말도록 다그쳤다고한다
하루는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엄마, 지금 막 집앞으로 탱크가 수십만 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왔어요"
그러자 어머니가 말했다.
"내가 그렇게 허풍 떨지 말라고 ,수억 번도 더 말했지!."
나도 대화나 설교 중에 과장이 많은 편에 속한다.
내가 한 설교를 다시 들어보면 얼굴이 화끈거릴 때가 많다.
왜? 너무 과장이 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장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노력하는데도 연약함의 뿌리가 너무 깊어서
그런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아주 관대하게 해석한다면, 한 가지를 강조하기 위해
집중하다보니 과장하게 된다고 설명할 수 있겠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보면,
연약함의 뿌리가 깊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직할 것이다.
과장의 문제는 쉽게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인간은 누구나 과장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과장하지 않는 사람이란 없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 중 과장하는 데 쓰이는
형용사가 얼마나 많은가?
또한 과장된 표현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가 자주 부르는 애국가에도 심한 과장이 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어떻게 동해물이 마르겠는가?
어떻게 백두산이 닳겠는가?
이렇듯 인간은 선의든 악의든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
어차피 과장하는 모습을 피할 수 없다면,
나쁜 것을 과장하기보다는 좋은 것을 과장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을 해본다.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에게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성공하는 사람은 꿈을 과장하고 비전을 과장하고
약속을 과정한다
반면 실패하는 사람은 실패를 과장하고
대적의 공격을 과장하고 자신의 고난을 과장한다
민수기 13장과 14장을 보면,
12명의 정탐꾼 기사가 나온다.
비관적인 태도를 보 인 10명의 정탐꾼이나
여호수아와 갈렙 모두 과장된 표현을 사용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10명의 정탐꾼은 무엇이라고
말했는가?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댜정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민 13:33)라고 외쳤다.
이 얼마나 엄청난 과장인가? 자신이 아무리 작고
상대가 아무리 커도, 어떻게 자신이 메뚜기 같겠는가?
실패하는 사람은 바로 이렇게 자학적인 과장을
통해소 스스로를 공격한다.
반면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민 14:9) 라고 외친다. 이것도 엄청난 과장이다.
상대가 아무리 작고 아무리 약하다 한들,
어찌 밥이 되겠는가? 아낙 자손이 밥이라면
자신은 공룡만하기라도 하다는 말인가? 과장이다.
그러나 이런 과장은 '거룩한 과장' 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신 약속, 하나님의
승리를 과장하기 때문이다.
종종 젊은이들 가운데 거창하게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여, 서울을 뒤집게 하옵소서."
"주여, 한국을 두집게 하옵소서."
나는 이런 기도나 슬로건을 들으면 이렇게 말하곤 한다.
"서울이 아니라, 한국이 아니라, 너 자신이나 뒤집어라."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하는 젊은이들이 무척 귀엽다.
왜냐하면 약속과 꿈을 과장하기 때문이다
반면 작은 어려움에 직면해놓고 과장되게
그 어려움을 부풀리는 사람이 있다.
"단군이래 최악의 경제 여건" 이라고 말하는
청년을 보면서 나는 '대체 그가 몇년이나 살았다고
이런표현을 쓸까?'의아스럽다
이제 스물을 갓 넘긴 청년이 쓸 표현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문제를 과장하고 어려움을 과장하는
사람이다. 미래에 기대할 것이크게
없다고 보는 것이다....계속
-젊은 사자는 썩은 고기를 먹지 않는다 에서-
♡주의 사랑으로 오늘도 행복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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