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은혜/신앙,시사,목양 칼럼

행복에 관한 진실,거지가 될 준비,평화는 행복으로 사는 길.

에바다. 2010. 2. 20. 12:08

행복에 관한 진실

세상에 태어난 이유와 계기는 다 다르겠지만 나는 하나님이 모든 인간에게 행복하게 살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셨다고 믿고 있다. 원죄로 인해 불행해졌건 불행해져서 원죄가 되었건 불행은 원죄다. 행복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행복을 전파하지만 불행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불행을 전염시킨다.

우리는 자기 자신이 행복을 경험해서 복이 무엇인지를 알고, 복을 만들고 다룰 줄 아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문제는 우리 주변에 진정한 행복을 경험한 사람이 극히 적어 보인다는 점이다. 대신 거짓된 복이 판을 치며 행복을 갈망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유혹하는 현실이다.

많은 사람들은 돈이 행복을 만들어 줄 것처럼 믿고 살아가는 것 같다. 학교에서도 그렇게 배운다. 사람들의 눈을 거의 하루 종일 빼앗는 온갖 미디어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선전과 광고들도 부자가 되면 행복해진다고 우리를 세뇌한다. 그러는 사이에 가족도 친구도 이웃도 모두 투명 인간처럼 보이지 않게 된다. 돈 때문에 판단력도 마비되어 동물처럼 어리석은 판단과 결정을 내린다. 내가 부자가 안 되어 봐서 헛소리를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돈이 가져다주는 삶의 편리나 껍데기 권세, 안일과 쾌락은 그 폐해에 비해 결코 대단한 것이 못 된다.

진짜 행복은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타향살이에 지친 사람이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 불가피한 이유 때문에 오랜 세월 외롭게 살아오던 두 부부가 다시 만나는 길, 젊은 시절 가정을 떠나 방황하던 아들이 다시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 수많은 사람들을 주검과 불구자로 만들던 전쟁터에 나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인할 수도 없었던 젊은이들이 애타게 그리워하는 자신의 연인들의 품에 다시 안기는 것이 행복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 있고 그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더 지나친 것은 내게 사치스런 욕망처럼 보인다.

나는 행복에 관한 진실을 2005년 쓰나미로 거의 대부분의 가족을 잃어버린 아체 주민들 속에서 살아가며 깨우쳤다. 사랑을 느끼고 평화를 경험하는 것이 행복이고, 사랑을 나누고 평화를 만드는 일이 곧 축복된 삶이다. 나는 이런 의미에서 행복하다. 다행스럽게 내 아내도 살아가는 것이 행복하단다. 이제 25년을 함께 살았으니 서로의 진심을 모를 만한 처지는 아니리라 생각한다.

거지가 될 준비

왜 우리가 행복해졌을까? 사실 우리는 남들이 매우 걱정하고 염려하던 길을 선택했다. 독일에서 신학 박사가 되고 난 이후 나는 교회나 신학 대학에서 일자리를 찾으려 들지 않고 유학 전부터 함께 세계 현실을 마음에 품고 기도하는 젊은이들과 더불어 우리가 드리는 기도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삶을 나의 직업으로 삼고 살겠다고 결심했다. 살아갈 길이 막막할지라도 교회에 찾아가면 성미라도 구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학위 취득을 위한 마지막 시험이 통과되자마자 나는 학위를 취득했다는 기쁜 소식과 더불어 이제부터 거지가 될 준비를 하자고 아내에게 알렸다. 아내는 우리와 우리 자녀들은 구걸한 쌀로 끼니를 연명한다 해도 모시는 부모들까지 그렇게 해 드릴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매우 싸늘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행히 우리는 구걸하지 않고도 뜻하던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 내가 거지가 될 결심을 하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분쟁 지역에서 평화를 만드는 사역을 시작하기는 어려웠으리라고 생각한다. 평화를 만드는 일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이고(롬 14:17) 하나님이 축복하신 일이며(마 5:9) 무엇보다도 내가 나의 소명이라고 여기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자기의 소명을 따라 산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고 자기의 자리에 서는 일이며 자기의 길을 걷는 것이다. 나는 이것보다 더 근본적인 복은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행복한 또 다른 이유는 감동을 주는 진실한 동료들과 함께 일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 교회나 대학에서 일하면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로부터 아쉽게도 깊은 감동을 받지는 못했다. 교회나 기독교 기관에서 함께 일했던 동역자들이나 대학에서 만난 교수 요원들이 대체로 예의 바르고 말도 잘하며 부드러운 매너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누군가 자기의 밥그릇에 손을 대기만 하면 고슴도치처럼 쏘아 대는 이기적인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자기를 부인하는 진실한 사람들과 더불어 서로에게서 존경심과 감동을 느끼는 일터에서 일하고 싶었다. 이 꿈이 내게 이루어졌으니 어찌 내가 행복하지 않겠는가?

개척자들의 동료들이 모두 언제나 성숙한 자세와 입장을 견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 공동체도 때로 서로 식사 당번을 미루거나 맡은 구역의 청소를 하지 않아 불만을 품을 때도 있다. 때로 고양이를 키울 것인지 말 것인지 같은 사소한 일로 갈등을 빚고, 얼굴을 붉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부모와 가족들의 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30만 원이 채 안 되는 적은 용돈만 받으면서도 열악한 환경과 여러 가지 위험을 무릅쓰고 평화를 만들기 위해 여러 나라에서 일하고 있다. 나는 이들이 이런 분쟁 현장의 부름을 받아 그 현장으로 홀연히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다보며 마음에 흐르는 눈물을 훔치곤 한다.

평화는 행복으로 가는 길

세상에는 살아가는 방법도 일거리도 다양하다. 그중에도 평화를 만드는 일은 특별히 복되다. 왜냐하면 평화를 위해 일하다 보면 스스로가 평화로워져야 한다는 내면 요구에 응답하려고 노력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화를 위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면서도 때로 다투고 갈등을 겪는다. 예전에는 어느 순간 포기해 버리고 안 보면 그만이라고 체념한 채 관계 개선을 위해 더 이상의 노력을 기울이려 들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이제는 매우 깊은 갈등과 상처를 입히는 다툼이 생겨도 더 이상 서로를 포기하거나 체념하지 않고 관계 개선을 위해 끝까지 노력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 차이가 참 소중하다.

언젠가 평화 활동가라는 분들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중에 어떤 분들은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불의한 자들에 대해 깊은 증오심과 적대감으로 찬 투쟁을 해야 하는데 비폭력적인 평화 활동가들은 오히려 이런 투쟁 의지를 훼손시킨다고 비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불의는 증오에 의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폭력적인 투쟁으로 평화를 만들 수도 없다. 평화 운동가의 가슴 속에는 평화가 담겨져야 하고 폭력이 아닌 평화로운 방법과 과정으로 평화는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부단히 평화의 영성을 체득하기 위한 자기 수련을 해야 하고 평화로운 심성을 얻어 가는 자기 성숙과 변화야말로 인생 최대의 선물이라고 여겨진다. 평화를 만드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기가 되어져야 할 모습을 찾아가는 남모를 기쁨과 감사가 있다.

또한 하나님만이 평화를 만드는 사람을 축복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를 둘러싼 주변의 지인들도 평화를 만드는 사람을 존중해 주고 사랑해 준다. 우리는 비록 가난하지만 이런 애정 어린 손길을 통해 하나님과 사람들의 위로와 격려를 받고 있다. 때로는 가끔씩 다른 기관이나 현장에서 일하는 평화 활동가들이 우리 샘터 공동체를 방문하기도 한다. 이들은 직업이 평화를 만드는 일인지라 짧은 시간에도 우리들의 사역과 공동체 안에 있는 갈등과 분쟁을 잘 이해하고 기꺼이 우리 안에 있는 문제와 갈등을 해결해 나가도록 우리를 도와주곤 한다. 만일 우리가 평화를 위한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지금 같은 삶을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결코 이런 귀한 사람들을 만나 그 소중한 은혜를 누리지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개척자들은 오랜 꿈

나는 20년 전에 한줌의 젊은이들과 더불어 세상에서 전쟁과 재난과 기아로 고통당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고, 이 기도 모임은 점차 젊은이들을 분쟁 지역으로 파견하여 평화를 만드는 실제적인 활동들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한국 청년들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대만, 중국, 일본 미국, 독일, 스위스 등 여러 나라의 젊은이들이 참여하는 국제적인 평화 활동 단체가 되었다.

돌이켜 보니 지금도 긴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1994년 아프리카에 갔을 때 르완다는 내전으로 후투족과 투치족이 서로 종족들 간에 피비린내 나는 분쟁을 벌이고 있었고 수많은 난민들이 탄자니아의 까라그웨 난민촌으로 밀려 들어왔다. 나는 난민촌의 어린이들이 밤새워 부르는 증오와 복수의 노래를 들으며 분쟁 지역의 난민촌에 천막을 치고 온 세상의 젊은이들을 불러 평화를 가르치는 학교를 세워 피의 복수의 사슬을 끊고 아이들에게 잃어버린 미래를 찾아 주리라 굳게 다짐했었다.
1998년 12월, 학위 통과 직후 보스니아 헤르츠고비나를 방문했을 때 총탄으로 부서지고 구멍 난 집 안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황소바람을 막으려고 할머니들이 아슬아슬하게 창틀에 매달려 곱은 손으로 허물어진 곳들에 비닐을 치는 모습을 보며 이런 분쟁 지역들에 세계의 젊은이들을 부르리라고 결심했었다.

독일로 돌아오는 버스의 차창을 통해 흰 눈이 덮인 트랜스 발칸 산맥을 바라보며 세계 여러 나라의 젊은이들이 평화의 복음을 마음에 품고 눈 덮인 산맥을 넘어오는 모습을 꿈꾸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었다. 이런 꿈과 희망과 기도와 결심들이 밑거름이 되어 오늘날 동티모르와 아체와 아프가니스탄과 캐시미르에서 평화 학교를 꽃피우게 했다. 개척자들은 해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청년들을 불러, 폭력 속에서 태어나 폭력 속에서 자란 1,000여 명의 분쟁 지역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평화 학교를 열고 있다. 현지의 어린이들과 청년들은 익숙한 총과 폭력 대신 어쩌면 평생 경험해 보지 못한 용서와 화해를 평화 학교에서 배우고 있다,

내가 어눌하고 내성적인데다 외국어에도 능숙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젊은이들을 만나고 불러 모으려는 용기를 내게 된 것도 이런 꿈들이 나를 움직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심각한 분쟁 지역에 갈등을 겪고 있는 서로 다른 모슬렘 부족 젊은이들과 더불어 평화의 공동체를 세울 것을 꿈꾸고 있고 일본의 청년들과 더불어 일본에도 평화를 위한 공동체를 만들려고 한다.

돈에도 명예나 지위에도 흔들림이 없이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순수한 젊은이들과 더불어 온 세상에 평화를 만들어 가는 삶을 살아간다는 사실 그 자체가 내게는 꿈같은 현실이다. 자신의 꿈이 실현되어 나가는 사람이 행복할 수 없다면, 그것도 하나님의 나라의 기저인 평화를 만드는 공동체의 꿈을 이뤄 나가는 사람이 행복할 수 없다면, 이 세상에 누가 과연 행복한 사람일 수 있겠는가?

송강호 / 개척자들 부설 코메니우스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