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은혜/신앙,시사,목양 칼럼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하여 도적질하는 자들

에바다. 2010. 3. 31. 11:27
하나님 말씀을 빙자하여 도둑질하는 자들

아무리 성경 말씀을 인용하여 성도들을 가르친다고 할지라도 그 교훈의 결국이 인생(人生), 즉 썩어지고 없어지고 쇠하여 가는 이 육신의 세상과 관련된 것이라면 그것은 곧 하나님의 계명(말씀)이 아니라, 영적으로 온전하게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순전히 사람의 계명(입담)이라고 단언할 수밖에 없다.

물론 다수(多數)의 목회자들에게 해당되는 내용은 아니지만 성도들이 상담을 통해 "목사님! 이 육신(肉身)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힘들고 고달픕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라고 질문하면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그렇게 자신의 고통과 고난을 고백하는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고자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때문에 지금 잠시 성도님이 고난과 고통을 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성도님에 대하여 더 크신 뜻이 있기 때문에 그러시는 것이니 이제부터라도 우리가 힘을 합하여 이 문제들을 두고 해결받기 위하여 기도합시다. 성경에서도 그런 말씀이 있잖습니까?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마 7:7~8)

이처럼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또한 지금보다 더 큰 복으로 성도님을 위하여 예비해 두셨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더욱더 긍정적인 사고와 믿음을 가지고 모든 문제들이 해결될 줄로 믿으시고 입술로 시인하십시오. 그러면 갑절의 축복으로 응답을 받으실 것입니다. 문제란 해결받기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문제란 축복받기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가르셨고 주님께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우리들에게 베푸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그러한 하나님의 기적을 믿고 작정 기도합시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주시고 찾는 자에게 찾게 해 주시고 두드리는 자에게 문을 열어 주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그러면 대부분의 성도들은 열심히 "주여 응답해 주시옵소서!" "주여 해결해 주시옵소서!"라고 열심히 기도한다. 그러면서 무의식중에 자신의 모든 문제들이 해결함을 받는 꿈을 꾸기도 한다. 또한 이를 통하여 성공하고 인정받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 보기도 한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영적으로 하나님을 온전하게 만나지 못한 목회자들의 가르침이고 성도들의 신앙관이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오늘날 수많은 목회자들의 이와 같은 가르침과 성도들의 신앙관과는 너무나도 다른 초대교회 사도들의 온전한 가르침과 성도들의 신앙관에 대해서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주 오래전 복음의 빛을 받은 후에 너무나 큰 고난과 고통의 싸움 가운데서도 온전한 믿음으로 인내(忍耐)하였던 히브리 성도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고난과 고통의 환난 가운데서 오히려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었으며, 심지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자신들의 산업을 빼앗기까지 하였다.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 (히 10:32~34)

이처럼 그들은 예수를 믿는다는 것 때문에 핍박을 받아야만 했으며, 조롱을 당하고, 심지어는 예수를 믿는 것 때문에 있는 것까지도 빼앗겨야 하는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해야만 했다. 이때, 하나님의 사도들은 환난과 핍박 가운데 있는 그들을 향하여 위로의 메시지, 축복의 메시지를 선포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히 10:35~37)

바로 이것이 하나님을 빙자하고 하나님의 말씀 몇 구절을 도용한, 사람의 계명 같고 사람의 교훈 같은 가르침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복음인 것이다.

그 당시 큰 환난과 고난 가운데 있던 히브리 성도들은 인내 후의 문제 해결, 인내 후의 축복 응답, 인내 후의 성공한 사람, 인내 후의 사회 리더, 인내 후의 영향력 있는 인생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인내 후에 더 낫고 영구한 하늘의 산업이 자기들을 위해 예비되어 있음을 바라보았다는 사실이다.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 (히 10:34)

바로 이것이 지금의 이 육신의 세상 사람들이 가질 수 없는 꿈이고, 감히 볼 수 없는 이상이었으며 짐작할 수 없는 장래의 일이었다. 그러므로 온전한 믿음의 성도는 이와 같은 신령한 신앙을 소유해야 하는 것이다.

어떤 성도가 자신의 담임목사에게 물었다. "목사님! 우리 신앙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 때 담임목사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큰 꿈을 가지십시오! 항상 긍정적인 사고(思考)를 가지십시오! 그리고 비전(Vision)을 가지시고 입술로 시인하는 담대함을 가지고 이루어질 줄로 믿으십시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주님께서 바라시는 진정으로 참된 복음(福音)일까?

아주 오래전,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미 2천여 년 전, 오늘날 지금의 우리들보다도 더욱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가 있다. 어느 빌립보 교인이 사도 바울에게 물었다. "선생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이때 사도 바울은 이미 2천여 년 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이 종말 신앙을 강조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빌 4:5)

그런데도 오늘날 횡횡하는 많은 목회자들의 계명(誡命) 같은 가르침들에는 한밤에 도적같이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대망하는 종말적 소망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결국 주님께서 다시 오심을 대망하게 하는 가르침이 아니라 오히려 이 육신의 삶속에서의 인생의 꿈과 비전을 바라보게 하는 가르침을 설파하는 목회자들은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면서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는 악한 종들이라는 사실이다.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 24:48~51)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꿈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대망이 아니라면 그것은 곧 개(犬)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입술로 시인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에 대한 준비와 관련이 없다면 그것은 곧 염불이고 주술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우리 모두가 가진 비전이 천국과 관련이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바로 육신적인 이 세상 천하만국의 영광만을 바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매사에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확신하는 것이 복음 전도와 관련이 없다면 그것은 이 육신의 삶 속에서 항상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에 대한 염려를 극복하기 위한 자기 자신의 마인드 컨트롤(Mind Control)일 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온전한 복음의 비전이란?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육신의 삶인 인생과 결부된 것이 아니라 하늘의 영원과 관계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늘로서 오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우리 믿음의 성도들의 영원한 생명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골 3:3~4)

그러므로 이 육신의 삶 속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싸워야 하는 신앙의 투쟁은 문제 해결, 축복 응답을 받기 위한 투쟁이 아니라, 의(義)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기 위한 투쟁인 것이다. 왜냐하면 온전한 믿음의 선한 싸움의 상급이 곧 영생(永生)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 하였도다." (딤전 6:11~12)

하지만 문제는 아무리 성경 말씀을 인용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가르친다고 할지라도 그 교훈의 결론이 인생, 즉 썩어지고 쇠하여 가는 이 땅의 소망과 관련된 것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이 아니라 곧 사람의 계명인 것이다. 때문에 그러한 목회자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한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보라 서로 내 말을 도적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렘 23:30)

그러므로 온전하고 참된 복음은 영원의 소망을 노래하게 한다. 그리고 온전하고 참된 복음은 영원한 소망 가운데서 믿음의 성도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흠도 점도 없이 하나님 한 분만이 드러내기 위하여 진실한 믿음으로 힘써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벧후 3:13~14) 

윤요셉(병수) / 벧엘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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