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제사문제 갈등, 슬기로운 대처 필요
제사 등 기독교인 전통문화 갈등 첨예
22일 중추절을 앞두고 기독교인 주부들의 고민이 깊다. 모든 가족이 기독교인이면 큰 갈등이 없겠지만, 타종교인이나 종교를 갖지 않은 이들과 함께 살고 있는 이들은 명절 때마다 제사문제 등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다. 다종교사회를 사는 기독교인들, 특히 제사음식을 준비해야 할 크리스천 주부들의 고민과 갈등은 줄기는 커녕 늘어만 간다. 특히 제사를 우상숭배로 규정하며 배타적 태도를 취할 것을 가르치는 보수적인 대다수의 한국교회의 풍토를 염두에 둔다면, 이들이 부딪히는 마음의 갈등이 클 수밖에 없다. 자신의 종교와 가족간의 유대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가족이나 친지간에 종교간 대립과 갈등이 발생하는 때도 추석 등 민속명절 기간이다. 친지들 사이에서 자기의 주장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생활의 모범으로 타인들을 감화시켜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종교 사회에서 제사문제는 가족갈등의 요인·명절 때마다 종교문제로 시끄러운 집안이 많다. 그 출발은 제사문제에서 비롯된다. 제사를 우상숭배란 생각으로 절하지 않는 기독교인들에 대해 가족구성원이나 친지가 문제를 제기하면서 갈등이 빚어지는 것이다. 당사자가 종가집의 한 일원일수록, 젊은 나이일수록 처신하기가 쉽지 않다. 비기독교인 집안 어른의 언짢은 말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꾸지람에 대해 말대꾸를 할라치면 종교간 설전으로 확전되기 쉽다. 심지어 고성이 오고가는 등 심각한 갈등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온 가족과 친지가 모여 화기애애하게 보내야 할 명절이 갈등의 장이 되는 것이다.
즐거워야할 명절이 기독교인의 제사 참여하지 않는 문제로 티격태격
한 세대가 모두 기독교인일지라도 이러한 고민에서 비껴갈 수 없다. 핵가족을 유지할지라도, 명절이면 친지를 방문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쌓여온 갈등이 명절 때마다 재연된다. 가장이 형제중 손아래 사람의 경우, 제사를 지내는 큰댁을 방문하지 않을 수 없고, 이 과정에서 종교갈등이 빚어진다. 제사를 지내는 큰댁을 방문하면 제사과정에서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제사후 종교문제로 티격태격하는 일이 다반사이다.
종손이 기독교인이라면 그 갈등이 더욱 첨예하다. 제사를 주관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곤란한 지경에 처한다. 제사를 주관하지 않으려니 집안 어른과 친지의 원성이 드높고, 이를 주관해 준비하려니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제사를 준비하곤 하지만, 종손으로서 제사를 주관하지 않을 수 없어 신앙문제로 마음이 심란하다. 다른 이를 내세워 제사를 진행한다 할지라도, 이후 이 문제로 가족이나 친지들 사이에 묘한 갈등이 빚어진다.
가족간 첨예한 싸움으로 비화되는 경우도 다반사·이러한 문제로 기독교인이었던 종손이 자신의 신앙을 포기하는 사례도 많다. 시시때때로 벌어지는 갈등을 넘지 못해 나타나는 결과이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가족이나 친지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명절이 즐겁기는커녕, 오히려 가족 구성원간의 갈등으로 나타나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한 가족 중에서도 기독교인을 한 축으로 하고, 비기독교인을 한 축으로 해서 대립이 촉발되기도 한다. 매번 소모적인 논쟁이나, 미묘한 갈등이 재연된다.
종교적 문제에 재산문제까지 겹치면 그 갈등은 심각한 대립으로 비화되곤 한다. 기독교인 종손이 제사를 주관하지 않으면, 종손의 자리는 물론 재산까지 내놓으라는 말을 들어야 한다. 심각한 경우에는 제사 등 종교적 문제에서 출발한 갈등이 재산문제로 결합돼 법정싸움까지 확대된다.
집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크리스천 주부는 제사문제 등으로 냉가슴을 앓는다. 제사음식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제사문제를 우상숭배로 보는 보수적 한국교회 현실상, 제사음식을 만드는 것 또한 금기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는 교단이 많지만, 아직도 많은 수의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제사음식을 준비하거나, 이 음식을 먹는 것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고 설교하고 있다.
그러나 제사를 우상숭배라고 규정할지라도, 이 음식을 만들거나 먹는 것조차 금기시하는 것은 잘못된 관점이라는 시각 또한 만만치 않다. 명절이나 시제사에서의 음식을 나누는 것은 가족공동체의 전통적인 먹거리 나눔이요, 삶의 문화로 자리매김해 왔다. 이를 종교적 문제로만 접근한다면, 가족간의 소통까지 막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제사음식 금시기 문화도 갈등에 한몫, 가족 융화 앞장서는 태도 절실
갈등을 조장하기보다, 가족 속에서 융화되는 슬기로운 대처 필요·전통적으로 한국의 문화는 ‘밥상 공동체’로 대별돼 왔다. 밥상을 통해 가족의 공동체가 구현돼 왔고, 음식의 나눔을 통해 돈독한 친밀감을 표현해 왔다. 명절 때 밥상에 함께 앉아 음식을 나누는 것도 이러한 과정의 일환이다. 그런데 설사 음식들이 제사상에 사용됐다고 해서 이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는 것은 밥상공동체를 깨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심지어 일부 교회에서는 교인들에게 제사로 갈등을 빚을 수 있으니, 종가방문이나 친지방문을 하지 말 것을 종용하기도 한다. 교회가 교인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비기독교인들과의 갈등을 부추기는 형국이다. 일부 교회에서는 이러한 시각을 반영, 명절 시기에 기도원집회를 개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전도의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비록 종교적 문제로 갈등이 빚어진다 할지라도, 가족이나 친지의 관계를 끊을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 가족이나 친지방문을 권유하고, 이 속에서 끈끈한 교류가 이루어지도록 인도해야 한다.
제사가 우상숭배가 아니라는 진보적 태도를 취하는 목회자도 해를 거듭할수록 늘고 있는 추세다. 한국교회가 대부분 이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는 현실에서 이를 공론화하는 것조차 금기시돼 왔으나, 유교는 종교가 아니라는 관점에 근거해 민족문화적 관점에서 이를 접근하는 이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제사를 우상숭배로 여겨 참예하지 않더라도, 다른 이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함으로써 갈등을 조장하는 등의 행위보다는, 가족간의 융화에 앞장서는 슬기로운 기독교인의 대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010.9.19.기독교신문)
서울대 손봉호 명예교수가 제시하는 기독교인의 추모예배와 효도
손병호 교수
“이 땅에 기독교가 전래된 지 12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조상 숭배(또는 제사) 문제가 기독교 복음 전파에 적지 않는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추석을 며칠 앞두고 서울 강남의 한 교회에서 만난 손봉호(72·영동교회 장로·사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손 교수는 “제사 문제만 해결되면 교회에 나오겠다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면서 ”제사나 절의 문제가 기독교의 근간을 흔들 소지가 있다면 당연히 배격해야 하지만, 지금은 구한말 초대 교회 시절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기독교 추모예식이 새롭게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요즘 크리스천 가운데 제사를 우상 숭배나 조상신 숭배로 여기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속으로는 제사를 우상 숭배로 여기지 않으면서 겉으로는 말하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전통 제사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는 새로운 추모예배 보급이 시급합니다.”
손 교수는 기존의 기독교 추모예배는 성도들에게는 유익하나, 불신자들과 함께 하기에는 어려움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그는 요즘 사랑의교회(오정현 목사) 후원으로 성경적인 추모예배 및 대안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내달 이와 관련한 공청회를 열고 보고서도 낼 계획이다.
“부모님 살아계실 때 잘하는 것이 자식의 도리이며 성경적인 생각입니다. 얼굴도 모르는 먼 조상에게까지 제사를 지내는 것은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대까지 추모예배를 드리는 것이 어떨까요? 올 추석은 가족간 유대 관계를 돈독히 하는 일에 열심을 냅시다. 제사 문제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고통이 조금이나마 줄어들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국철학회 회장, 동덕여대 총장을 역임한 손 교수는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와 고신대 석좌 교수로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성숙한사회가꾸기운동,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 샘물호스피스, 나눔과기쁨, 서울문화포럼,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등을 이끌고 있다. (2010.9.19.국민일보/미션라이프 유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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