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찍으로 때려도 죽지 아니하리라?
보성 3남매 사건을 통해 다시 돌아본 잠언의 의미
김희석 교수(총신대학교)
최근 전남 보성 3남매 사건에서 잠언 23:13-14 해석이 이슈가 되었다. 다음과 같은 구절이다.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
이 구절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먼저, 성경 말씀이므로 이 구절이 진리라는 것이 논의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해석이 바른 해석일까?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것처럼, 이 말씀을 ‘아이를 때려도 죽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하여 아이를 마구 때리거나 학대해도 된다고 받아들여도 되는가? 그렇지 않다. 본문의 뜻은 ‘채찍으로 때림’에 있지 않고, ‘적절한 훈계가 필요하다’는 데 있음이 분명하다. 조금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만큼 훈계를 하지 않으면 육신은 편하게 해줄 수 있을지 몰라도 영혼은 죽게 만들 것이라는 지혜로운 권고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런 ‘상식적인’ 해석은 우리에게 또 다른 한 가지 문제를 던져준다. 본문에는 ‘때려도 죽지 않는다. 채찍으로 때리면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라는 명백한 내용이 나오기 때문이다. 본문이 명백하게 ‘때려도 죽지 않는다’고 했는데, 왜 보성 사건에서처럼 때리고 학대하면 죽는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여기서 우리가 성경구절을 해석할 때 암묵적으로 전제되어있는 것은 이 말씀을 ‘상식선에서’ ‘지혜롭게’ ‘센스 있게’ 해석해야 한다는 점이다. 학자들은 이를 잠언의 ‘상황성’이라고 부른다. 잠언에 등장하는 개별 잠언(한두 절로 정확히 구분되는 속담 형식의 말씀들. 잠언 23:13-14가 좋은 예다)들은, 모든 상황 속에 일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지침이 아니라, 삶의 특수한 단면에 적용할 수 있는 권고라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렇게나 본문을 마음대로 적용하면 안 되고, 모든 상황에 적용되니 안심하고 막 적용하자 해서는 안 되고, 적절하게 상황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때려도 죽지 않으니 맘 놓고 때리자는 식의 적용은 잘못된 적용의 대표적인 예가 된다는 논증이다.
이런 학자들의 지적은 일면 당연하게 생각되는 내용이다. 그러나 센스 있게 적절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이런 해석 원리는 ‘성경은 절대진리다’라는 보수적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이렇게 되면 성경 해석과 적용의 기준은 ‘말씀 그 자체’가 아닌 ‘사람의 센스, 해석자의 지혜’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잠언 말씀은 절대진리다’라는 명제와 ‘잠언 말씀은 적절하게 적용해야 한다’라는 명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은데, 이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잠언 1:7과 9:10은 우리에게 알려준다. 바로 “지혜의 근본은 여호와 경외”라는 사실이다. 잠언 23:13-14와 같은 개별 잠언을 ‘적절하게’ 이해 / 적용하려면 지혜가 필요한데, 이 지혜의 핵심 본질이 바로 ‘여호와 경외’라는 것이다. 즉, 잠언 23:13-14와 같은 말씀을 지혜롭게 적용한다는 것은 ‘사람의 지혜, 해석자의 센스’가 필요하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여호와 경외’의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이는,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내가 어떻게 이 말씀을 이해하고 적용해야 그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행동/적용이 될 것인지를 철저하게 고민하고 씨름해야 한다는 뜻이다. 나를 증명해보이고, 내 옳음을 드러내보이고, 내 믿음이 큰 것을 확증하고, 내 만족을 취하는 것은 ‘내 지혜’일 뿐이다. 다시 말해, 겉으로 아무리 지혜로워 보인다 해도, 결국은 잘못된 ‘거짓 지혜’에 불과하다. 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결정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사람을 살리고 보살피기 위해 노력하고, 나 자신은 희생하고 없어지더라고 공동체는 살아나고, 정해진 원칙을 벗어나는 두려움을 뛰어넘어 생명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것, 복음의 본질에 집중하는 것, 즉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 그분의 공동체를 위해 결정, 이해, 적용하는 것은 ‘참 지혜’가 된다는 뜻이다.
생각해보면, 예수님께서 이런 ‘참 지혜’가 되셨다. 그분은 우리를 죽을 때까지 때리지 않으셨다. 오히려 자신이 채찍에 맞고 우리를 위해 대신 십자가의 죽음을 감당하셨다. 다른 이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이 매질을 당하셨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이사야 53:5 하반절).이런 예수님의 모범이 우리의 해석 기준이 된다. 잠언 23:13-14 말씀은 ‘적절히’ 적용해야 하지만, 그 ‘적절함’은 ‘내가 보기에 적절함’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적절함’이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 보시기에 적절함’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희생을 감수하면서 주님과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지혜’여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잠언 23:13-14은 절대적 진리의 말씀이다. 변하는 상황에 따라 해석을 달리 해야 하는 말씀이 아니라, 영원불변하신 진리를 보여주는 본문이다. 다만, 그 이해와 적용에 있어서 예수님 닮은 삶의 지혜(적절함)가 필요한 것이다.
이런 해석이 우리에게 과연 무엇을 시사할까? 우리는 우리 자신이 다른 사람을 향해 ‘채찍’을 내리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실제로 육신에 핍박을 가하지는 않더라도, 말로, 눈짓으로, 상황으로, 얄팍한 신앙의 이름과 핑계로, 율법적인 판단으로, 억울함에 기인한 복수의 심정으로, 사실은 나 자신의 유익과 성공을 위해 남의 희생과 피해를 강요하고 몰아가는 일은 없을까? 보성 사건은 우리에게 ‘신앙인으로서 우리의 신앙을 바르게 사용하고 있는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사용하고 있는지 돌아보라’는 엄중한 경고를 보내고 있다. 잘못한 어떤 한 사람을 탓하기에 앞서, 신앙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나’와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철저하게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2012.2.22.Christianity Today Korea)
김희석은 미국 고든-콘웰신학교에서 구약학(Th. M.)을, 트리니티신학교에서 구약학(Ph.D.)을 전공했으며, 현재 총신대학교 구약학 교수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