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과학자 파스칼, 그리고 ‘파스칼의 내기’
조덕영박사의 창조신학
조덕영박사
(창조신학연구소소장)
파스칼, 과학적 천재성과 문학적 감수성을 겸비한 영재
17세기, 서양에는 걸출한 천재 사상가들이 등장한다. 프랑스 태생의 합리주의자 데카르트(1596-1650), 네덜란드 태생의 유대계 범신론자 스피노자(1632-1677), 독일의 천재 라이프니츠(1646-1716)가 그들이다. 천재성에 관한한 이들과 방불(彷佛)하며 신앙에 관한한 이들보다 앞선 17세기 인물이 있다면 오직 한 사람 바로 파스칼뿐일 것이다.
"갈대는 속으로 울고 있었다."
민족 시인, 신경림 시인의 초기 시편에 등장하는, 사람을 갈대에 비유한 이 모티프는 바로 파스칼에게서 온 말이다.
"인간은 자연 속에서도 가장 가냘픈 한 줄기 갈대와 같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사람들이 사람 스스로를 표현할 때 즐겨 사용하는 이 말은 바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고전 작품인 파스칼의 「팡세」(Pensées, 주: 생각한 것들 즉, 명상록이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 말)에 나오는 말이었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도 세계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이 유명한 명구(名句)도 바로 팡세에 등장한다.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은 과학의 천재로 수학자, 공학자, 철학자였을 뿐 아니라 평신도 신학자요 문학적 조예와 따뜻한 성품까지 겸비한 사람이었다. 파스칼은 비록 정규 학교에는 다닌 적이 없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관찰력과 집중력이 뛰어난 아이였다. 빈 접시를 막대기나 젓가락 등으로 두드리면 울림에 따라 여러 소리를 낸다는 것은 누구나 어린 시절에 한 번쯤 즐겼던 놀이이다. 그런데 어린 파스칼은 이 단순한 사실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그는 몇 가지 실험을 한 후 간단한 논문을 작성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의 나이 겨우 11살 때 일이었다. 12살이 되어서는 수학의 한 분야인 점과 선 그리고 면과 입체 등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성질을 연구하는 기하학에 관심을 갖고 독자적으로 공부하여, 대 수학자 유클리드가 오래 전에 세운 「유클리드의 제 1 권 제 32명제」를 증명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4년 후 ?원추형 곡선에 관한 이론?이라는 수학의 유명한 정리로 발전하였다. 이 평면 기하학의 정리는 오늘날 <파스칼의 정리>로 널리 알려져 있다.
파스칼이 컴퓨터의 원조가 된 사건
1639년, 17살이 되면서 파스칼은 아버지를 따라 르왕이라는 도시로 이사를 간다. 아버지가 그곳에서 세무 관계 사무를 맡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파스칼은 세금 계산에 분주한 아버지를 보았다. "어렵고 까다로운 계산을 좀 더 쉽고 간편하게 할 수 있게 아버지를 도와드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지역 세무 관료였던 아버지의 짐을 덜어 드리기 위해 시작된 파스칼의 연구는 5년 동안 계속되었으며, 다섯 개의 계산기를 고안하면서 보완을 거듭하여 드디어 계산기를 완성한다. 비록 덧셈만이 가능한 계산기였지만, 오늘날 전자계산기의 시발이라고 할 만한 위대한 발명이었다. 이 덧셈 기계는 여송연(呂宋煙) 담배갑 크기의 기계로 파스카린(pascaline)이라고 불렸는데 다이얼을 돌리면 윗부분 유리창에 숫자가 나타나도록 되어 있었다. 컴퓨터의 원조라 할 만한 이 기기는 처음에 총 50개가 제작되었다. 지금도 이 기계 중 일부가 남아있어 그의 천재성을 우리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이것은 사람이 기계를 사용하여 덧셈을 시작한 최초의 일이었다. 오늘날 컴퓨터의 역사를 다룰 때 마다 책의 서문에 반드시 파스칼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천재 과학자 파스칼
무엇보다 파스칼을 천재 과학자로 널리 알려지게 만든 것은 <진공에 관한 실험>과 <파스칼의 원리>의 발견이었다. 당시 과학자들은 자연의 어디에서도 진공은 불가능하다는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이탈리아의 유명한 과학자이며 그리스도인이었던 갈릴레이의 제자 토리첼리(1608-1647)가 실험적으로 진공이 가능하다는 결과를 조심스럽게 발표하였다. 한쪽 끝이 막힌 유리관에 수은(水銀)을 가득 넣고 열린 유리 관 입구를 수은 통 안에 넣으면 압력에 의하여 수은은 내려오게 되고, 밀폐된 유리관의 윗부분에는 진공이 생기게 된다는 이론이었다.
당시 스승인 갈릴레이가 지구가 움직인다고 주장하여 아리스토텔레스를 신봉하는 학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에게 종교 재판을 받은 사실을 잘 기억하고 있던 토리첼리는, 위대한 발견을 하고도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무조건 따르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과 과학자들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중세 시대 교회의 권한은 절대적이었다. 1277년, 파리의 대주교였던 땅삐에는 교황청의 재가를 얻어 소위 219가지의 금지 명제를 발표한 적이 있다. 이중에는 물론 현대 과학의 입장에서 보면 타당한 것도 있지만 틀린 것들도 많았다. 진공에 관한 언급도 바로 그러한 오류 중 하나였다. "진공은 존재할 수 없다"는 명제였는데, 그 이유는 신(神)께서 진공을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금지 명제가 발표된 후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교황청의 권한이 대단하였던 당시에 과학자 파스칼이, 토리첼리가 사망한 후 담대하게 자신이 확인한 실험 결과를 발표한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진공은 틀림없이 가능하다." 이것은 <진공에 관한 새 실험>이라는 논문으로 1648년 발표되었다. 그리고 1653년, 드디어 "완전히 밀폐 된 용기 중에서 정지하고 있는 액체(유체)의 한 부분에 압력(힘)을 가하면 그 압력(힘)은 유체 내의 모든 부분에 똑같이 전달된다."는 유명한 <파스칼의 원리>를 발견하였다.
이 탁월한 천재 과학자에게 있어 또 한 가지 주목되는 것은 그의 기독교 신앙이었다. <팡세>는 바로 그의 사후 편찬된 그의 신앙적 편린의 조각들을 묶은 것이었다. 여기서 그는 도박의 논리를 이용하여 사람들에게 신앙이 왜 필요한지를 역설하고 있다. <파스칼의 내기>”(Pascal's Wager)라고 알려진 이 논증은 다음과 같다.
파스칼의 내기란?
파스칼은 <팡세>의 제 3장 <도박의 필요성에 대해>에서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논증한다. <하나님이 존재한다>,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두 가지 갈림길에서 당신은 어느 쪽에 도박을 걸겠는가? 사실 이성은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고 어느 한쪽을 버릴 수도 없다. 이게 우리 이성의 한계이다. 또한 어느 한쪽을 선택한 사람을 우리 인간은 잘못했다고 비난해서도 안 된다. 우리 인간은 이 문제에 대해 참 된 결론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은 이 문제에 대해 반드시 내기를 해야 한다. 왜냐 하면 인간은 이미 인생이라는 배를 타고 떠나지 않았는가! 따라서 우리 인간은 이 문제에 있어 어쩌면 영원히 잃어버릴 지도 모를 두 가지가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것은 진실과 행복이다. 또한 우리 인간의 본성이 피하여야 하는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잘못과 비참함이다. 인간은 늘 그릇된 것을 피하고 비참한 상태를 피하려는 본성이 있다.
이제 이 같은 사전 지식을 가지고 이성과 의지와 지식과 행복이라는 점에서 이 문제를 접근해 보자.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어떤 득실(得失)이 있는가?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신이 존재한다고 내기를 건 당신은 모든 것을 얻는 것이다. 혹시 신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당신은 아무런 손해도 보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은 주저하지 말고 신이 존재한다는 편에 도박을 걸어야 한다’고 파스칼은 역설한다. 누구나 내기를 하는 자는 불확실한 것을 얻기 위해 확실한 것을 내 건다. 그런데 사실 이 도박에는 확실함이 있다. 인간은 진리를 알아내는 힘이 있다. 즉 이 도박은 도박의 이면(裏面)을 볼 수 있는 내기이다. 이 내기의 답은 성경에도 있고 그 밖에도 있다. 그런데도 당신은 이 내기를 걸지 않겠는가?
파스칼의 내기는 근본적으로 복음적 이해라기보다는 철학적 이해에 가깝다. 하지만 파스칼의 목적은 단순한 철학적 논증이 아니었다. 그의 목적은 더 높고 심오한 것이었다. 다방면의 천재였던 그는 철학의 한계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성의 마지막 단계는 그것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무한한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만일 이성이 그러한 것들을 인식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한다면 그것은 공허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팡세>에서 그가 그리스도 없이 하나님을 알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무익한 것에 지나지 않는 다고 역설한 것은 그가 <파스칼의 내기>를 통해 말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즉 그는 자신의 신앙 체험을 다른 사람들도 소유하기를 간절히 원하였다. 그것은 철학자와 지식인들의 하나님이 아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었다. 함부로 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범람하는 이 시대에 어쩌면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과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파스칼이, 사람들이 깨닫기를 간절히 원하며 외친 이 <파스칼의 권고>가 새삼 감동을 준다. 사실 파스칼은 1658년경부터, 본격적인 기독교 변증론(Apology for the Christian Religion)을 집필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파스칼이 30후반 나이에 요절한 관계로 이 책은 안타깝게도 완성되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그의 사후 출판된 <팡세>를 통하여 파스칼은 그의 신앙과 변증의 탁월함을 온 세상 사람들에게 세대를 뛰어넘어 끊임없이 알리고 있다.
“인간은 오직 두 부류밖에 없다. 자기를 죄인이라고 여기는 의인과 의인이라고 여기는 죄인이다.”(팡세 중에서)
* 이 글은 조덕영 박사의 ‘창조신학연구소’ 홈페이지(www.kictnet.net)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조덕영 박사는
환경화학 공학과 조직신학을 전공한 공학도이자 신학자다. 한국창조과학회 대표간사 겸 창조지 편집인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여러 신학교에서 창조론을 강의하고 있는 창조론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가 소장으로 있는 ‘창조신학연구소’는 창조론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로 구성돼 목회자 및 학자들에게 지식의 보고 역할을 하고 있다. ‘기독교와 과학’ 등 20여 권의 역저서가 있으며, 다방면의 창조론 이슈들을 다루는 ‘창조론 오픈포럼’을 주도하고 있다.
-크리스천투데이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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