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사금융과 그 교훈
임영천 목사(조선대학교 명예교수)
너무도 엄청난 일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시간의 문제였지 언제든 터지고야 말 일이었다. 쉬쉬 하며 감추어 두고는 지나칠 수 없는, 불원간 폭발하고야 말 거대 폭발물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서서히 터지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전국의 불법 사금융, 쉬운 말로 ‘불법 사채’의 피해 사례를 접수한다고 발표하였다. 단 사흘 만에 5천 건이 넘는 피해 사례가 접수되었다. 그리고 그 내용을 다소나마 알게 된 국민들의 입에서 탄성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니 저런…”, 또는 “어떻게 그런…” 등등 놀라움의 목소리였다. 참으로 경악할 일이었다.
단 몇 백만 원의 사채를 빌려주고 그것을 미끼로 수천만 원의 엄청난 이자를 받아 챙기는 인면수심의 인간들. 눈덩이처럼 불어난 이자를 갚지 못해 속칭 몸으로 때우는 일에 팔려간 여성 채무자들. 업소에서 일하는 데 방해거리가 된다고 하여 회임 중의 아이를 낙태하도록 강요받은 임신부들. 결국 그것도 저것도 탈출구가 마련되지 않자 제 목숨 자기가 끊어 버린 자살자들. 그런 자식들의 비참한 모습을 볼 수 없어 제 혈육의 목숨을 처리해 버리고 자기도 자살해 버린 아버지들…. 일일이 다 예거할 수 없는 참담한 사례들이 지금 각종 언론기관을 통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렇게 반응한다. 이런 일을 몰랐던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나? 왜 정부는 이제야 단속한다고 야단법석인가. 불법 사금융을 뿌리 뽑을 의지와 묘수는 과연 있는가. 불법자 처벌이 목적인가, 아니면 서민의 고충 해결이 목표인가. 이 대대적인 단속에 무슨 정치적 꼼수는 숨어 있지 않은가.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하는, 이와 비슷한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인가. 태산명동(泰山鳴動)에 서일필(鼠一匹) 격의 결과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인가. 등등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을 정부는 차제에 따갑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얼마 전에 총선을 치렀다. 그리고 금년 안으로 대선을 또 치러야 할 판국이다. 이 양대 선거의 틈바구니에 끼여 샌드위치가 되어버린 국민들이 여간 피곤한 것이 아니다. 잔치는 차리는 사람들과 손님들이 함께 어울릴 때에 즐거운 축제가 되는 법이다. 손님들은 버려두고 차리는 주인들만 취해 있다면 이건 진정한 축제가 아니다. 단지 ‘당신들만의 천국’일 뿐이다. 지난 총선은 과연 진정한 국민의 잔치였던가. 앞으로 다가올 대선은 과연 국민들의 기대에 찬 대축제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당신들의 천국’만을 구가하고 말게 될 것인가.
국회의원이 되거나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국민[국가]의 살림을 대신 맡아 처리하는 위치에 오르는 것을 말한다. 남의 살림을 맡아 처리한다는 것은 별다른 사명감 없이는 되지 않을 일이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사례를 보면, 고위 공직자 재산 신고의 실례(實例)에서 보듯이, 그런 높은 자리에 오른 분들이 대체로 자기 개인 재산만 몽땅 불리는 분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단돈 몇 백만 원이란 빚 때문에 노예로 팔려가거나 생명을 잃는 일이 비일비재한 마당에, 그런 것엔 오불관언(吾不關焉)이고 억! 억! 하며 자기 개인 재산만 늘리는 일이 항다반사(恒茶飯事)인 그런 나라에서 힘없는 서민들이 설 자리가 어디란 말인가. 고위 공직자가 공복(公僕)으로서의 위치를 지키지 않고 사복(私腹)만 채우는 그런 나라에서 경제민주화니 또 불법 사금융 근절이니 하는 일이 과연 가당키나 할 것인가.
나는 가끔 과거의 제정구 의원을 떠올릴 때가 있다. 그리 건강치도 못한 몸을 이끌고 서민들의 살림을 돌보느라고, 소외된 이웃을 보살피느라고 동분서주하다가 일찍 하늘의 불림을 받고 만 그분. 그런 의원이 단 몇 명만 있더라도 한국의 오늘 형편이 이러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에 젖어들 때가 있다. 양대 선거의 해이기 때문에 더욱 이런 일이 생각나는지도 모른다.
나는 뻐꾸기와 같은 생리를 지닌 정치 지망생들의 자제를 권고한다. 자기는 올바른 정치를 할 의지도 꿈도 없으면서, 다른 지망생들을 둥지에서 밀어내고 무조건 이기고 보자는 식의 몰염치한 행동을 하는 위정자들이 더 이상 나오지 못할 때 이 나라의 사정이 지금보다는 더 나아지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감 때문이리라.(2012.4.26.교회연합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