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에 들어 있는 과학 정보들 (34)
소(牛)에게서 배운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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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모든 짐승(소)에게 물어 보라 그것들이 네게 가르치리라 공중의 새에게 물어 보라 그것들이 또한 네게 말하리라 땅에게 말하라 네게 가르치리라 바다의 고기도 네게 설명하리라. 이것들 중에 어느 것이 여호와의 손이 이를 행하신 줄을 알지 못하랴”(욥 12:7-9).
모든 동물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며 따라서 창조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인간을 위하여 창조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모든 동물은 인간의 지배를 받으며 인간을 위하여 봉사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시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8). 사실 바다에 물고기와 땅의 짐승들 중에는 인간보다 훨씬 몸집이 크고 힘이 센 동물들이 많다. 바다의 고래나 상어, 육지에 호랑이나 사자를 보라. 힘으로 말하면 인간은 감히 그들의 곁에도 접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다스리라고 하셨고 실제로 인간은 그들을 도구를 통하여 다스리고 지배하고 있다. 그중에 가축인 소는 역사이래로 인간을 위하여 봉사하고 있다. 소는 인간에게 고기를 제공하며, 농사를 짓는데 있어 땅을 파는 일로 농부들의 힘이 되고 있다. 또한 소는 우유를 만들어 인간의 건강을 돕고 있으며, 소는 우리들에게 삶의 여러 가지 교훈을 주고 있다. 먼저 소는 우리에게 근면(勤勉)을 가르쳐주고 있다. 근면이란 부지런히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는 논과 밭을 갈 때에도 농부가 시키는 대로 묵묵히 쟁기를 끈다. 우리나라에서는 경작을 할 때 소 한 마리로 일을 하였으나 성경에 보면 중동에서는 두 마리의 소에 한 멍에를 메워 경작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새 수레를 하나 만들고 멍에를 메어 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소에 수레를 메우고 그 송아지들은 떼어 집으로 돌려보내고”(삼상 6:7).
소는 자신에게 주어진 멍에를 메고 쟁기를 끄는데 묵묵히 앞을 향하여 나아간다. 결코 뒤를 돌아보거나 중단하지 아니한다. 소의 이런 점을 아신 예수님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눅 9:62) 고 말씀하신 것이다. 소의 근면이 잘 나타난 장면은 사무엘 상 6장에 나오는 기사에서 절정을 이룬다.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의 법괴로 말미암아 독한 종기로 수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하게 되자 전쟁에서 빼앗은 법괴를 다시 이스라엘 나라로 보내게 되는데 그들은 새 수레를 만들고 그리고 아직까지 멍에를 메어보지 않은 새 젖 나는 소 두 마리를 구하여 수레를 메우고 여호와의 법괴를 수레에 싣고 벧세메스로 가게 하였다.
이 장면을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 사람들이 그같이 하여 젖 나는 소 둘을 끌어다가 수레를 메우고 송아지들은 집에 가두고 여호와의 궤와 및 금 쥐와 그들의 독종의 형상을 담은 상자를 수레 위에 실으니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선까지 따라 가니라”(삼상 6:10-12) 여기에 소는 새끼를 거느린 젖 나는 소라고 하였으니 비록 말을 못하는 짐승이나 자기의 새끼를 떼어놓고 가는 길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소는 울고 갔다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일꾼으로 부름 받은 우리도 소의 근면을 본받아 자기의 주어진 일과 사명에 성실하게 일하여야 한다. 인정사정에 얽매이는 것은 사명자의 자세가 아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마8:19-21에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라고 하였다.
사명자는 자기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자가 아니라 주인이 시키는 대로 순종하여야 한다. 비록 내가 가기 싫은 길이요, 하기 싫은 일이라 할지라도 주님이 명하시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따라야 한다.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 고난의 길임을 알면서도 주의 뜻이기에 그 길을 갔다.
“오직 성령이 각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3-24).
-교회연합신문칼럼(창조론과진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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