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간절한 소원이 있듯이, 제게도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는 제목들이 많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성도들의 행복' 입니다. "하나님, 우리교회의 성도들이
행복하게 해 주십시오." "행복을 누리며 살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 나는 행복을 퍼 주는 목사이게 하옵소서.'
이것이 저의 작은 기도입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한 사람 될 수 있습닜까?
기도의 사람이 되면 행복할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기도는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가게되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문제를 해결 받습니다.
질병을 고침 받습니다. 상한 심령이 위로를 받습니다.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움받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도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체험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맛본다는 말입니다. 성도가 날마다
하나님을 맛보며 산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더없이 행복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행복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기도의 금기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면서, 우리가 기도의 사람으로
살아갈 때 주의해야 할 몇 가지 사항을 말씀해 주고 계십이다.
이것은 기도하는 사람이 범하기 쉬운 실수이고, 쉽게 빠져드는
유혹이며 함정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경계하지 않으면
아무리 기도해도 상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기도의 금기는 무엇입니까?
첫째, 외식하는 기도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5절)
예수님을 우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처럼 기도하는 것을
금하셨습니다. 외식하는 기도는 어떤 것을 말합니까?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기도' 를 말합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외식적인 기도의 문제는, 그 기도가 하나님을
향하지 않고 사람을 향하는 데 있습니다.
기도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만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자체가 사람에게 보이는 데 목적이 있는것이
아닙니다. 신앙의 초점은 언제나 하나님께 있고, 신앙의 목적은
하나님과 나 사이의 개인적 관계가 우선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에수님으로부터 가장 많은 책망을 받은 그룹은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사역을 가장 많이 방해
했던 그룹도 바리새인들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율법주의자들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신앙의 초점
을 하나님께 두지 않고 사람들에게 두는 데 있습니다.
이들의 종교적인 행위는 아주 열심입니다. 하루에 세번씩 시간을
정하여 기도했고, 일주일에 두번씩 금식하고, 소득의 십일조를
분명히 드리며, 율법을 지키기 위해 아주 충실하게, 철저하게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면에서 우리는 따라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이들을 한 번도 칭찬하신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아들을 책망하셧습니다. 왜 예수님은 이들을 책망하셨을
까요? 예수님이 책망하신 것은 사실상 이들의 이러한 신앙의
열심이 아니었습니다. 그 정신이었습니다. 이들의 열심은 사람들
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었고, 그 열심은 다른 사람들을 정죄 하는데
사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은 이점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이점을
신앙의 금기사항으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햐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아무리 종교적인 열심이 있고 말씀이 박식하다해도, 하나님앞에서
자신의 신앙을 세워 가는데 사용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로 향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자기를 자랑하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데 사용되면 그것은 이미 신앙의 의미를 잃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기도를 어렵게 생각하는 것이나, 기도를 두렵게 생각하는 분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기도가 하나님을 향하기 때문에 두렵고 어렵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련된 문장과 아름다운 어휘들을 찾고, 감동적이고
시적인 문장들을 만들려고 합니다.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생각하니 그 기도가 얼마나 두렵고 어렵겠습니까?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십니다. 그러므로 솔직하십시오.
정직하십시오, 그리고 담대하십시오, 나를 잘 아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기도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들째, 중언부언하는 기도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 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7절)
여기서 이방인이란 우상 숭배하는 사람들, 곧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일반의 세상 사람들을 말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다 우상 숭배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대신 다른 그 무엇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을 믿든지, 아니면 리처드 포스터가 말한 대로 현대의
우상인 돈, 권력,섹스 등 그 무엇을 의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 중언부언이란 말은 '의미 없이 반복하는 생명 없는 말' 을
의미합니다. 뜻도 모르고, 의미도 없이, 그저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주문의 형태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불교에서 염불하는
것이나 카톨릭에서 반복하여 외우는 기도문들이 다 비슷한 속성
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기독교에서도 위험성이 있는 기도문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기도문' 입니다. 우리가 이 기도문을
암송할때, 그 의미를 제대로 되새기면서 하는 것보다는 그냥
형식적으로 암송할 때가 많지 않습니까? 우리가 기도나 예배를
반드시 주기도문으로 마쳐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주기도문을 안하고 마치면 어딘지 좀 어색합니다. 그래서 그냥
구색을 갖추기 위해서 의미 없이 할 때도 있지 않습니까?
여기에 중언부언의 위험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럼 사람들이 왜 중언부언하는 것입니까?그 이유는 말을 많이
하여야 휼륭한 기도이고, 응답되는 기도인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의미도 없이, 말을 많이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기도는 하나님을 설득하려고 하는 기도도 있습니다.
그래서 길고 긴 설명을 덧 부칩니다. 자신의 설명에 하나님께서
감동을 받게 하려고 기도합니다. 어떤 기도는 아예 하나님을
가르치려는 기도도 있습니다.
공중기도는 3분을 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몇가지 이유에서
그렇습니다. 예배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공중기도가
길어지면 다음 순서에, 특히 설교에 많은 지장을 가져옵니다.
그리고 사람이 눈을 감고 다른 사람의 기도에 집중할 수 있는
대체적인 시간이 3분입니다. 3분이 넘으면 집중력이 급격히
떨어집니다. 공중기도는 개인적인 시간이 아닙니다. 회중을
대신하여 하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특히 예배시간의 대표기도는
그야말로 예배를 위한 기도입니다. 예배를 위해서 기도하면
3분이면 충분합니다.
여기서 8절의 말씀을 눈여겨보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우리가 구하기 전에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께서 이미
아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의미 없이 너무 말을 많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많은 말로 하나님을 감동시키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럼 기도할 필요성이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다 아신다면 우리가 왜 기도해야 합니까?
아니,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기도를 요구하십니까?
사실 이런 갈등이 우리에게 있을 수 있습니다.
에스겔 36장 35-36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이르기를 이 땅이 황무하더니 이제는 에덴동산 같이
되었고 황량하고 적막하고 무너진 성읍들에 성벽과 거민이
있다 하리니 너희 사면에 남은 이방 사람이 나 여호와가
무너진 곳을 건축하여 황무한 자리에 심은 줄 알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그리고 37절에 보십시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랴 할지라."
"그래도~~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왜 하나님은 이런 방식을 취하시는 것입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38절 끝에 보시면 "그러한죽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체험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이 여호와인줄 알게 되다는
것입니다.
참된 기도
그럼 참된 기도는 어떤 기도입니까?
첫째,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6절)
여기 골방에 들어가서 은밀히 기도하라는 말씀은 장소적인 의미
가 아닙니다. 앞서 말씀하신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회당과
큰 길 어귀에 서서 기도하는 것과 대조를 이루기 위한
표현입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기도하지 말고,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둘째, 하나님께 기도하라
"은밀히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는 말씀은 하나님께
네 기도의 응답과 상을 기대하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기도의 성격은 하나님과 나와 은밀한 데이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를 하지만, 그리고 부르짖고 기도
하지만, 기도는 하나님과 나만의 비밀입니다.
그럼 왜 우리가 모여서 기도합니까?
왜 통성으로 기도합니까?
우리가 함께 모여 기도하라는 것은 기도의 힘을 얻기 위함이고,
또한 성경에 우리가 합심하여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속히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환란
날에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했기 때문에 그 명령과 약속을 믿고
기도하는 것이지 사람들에게 모이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참된 기도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께로 향하게 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
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의 응답을 기대해야 합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한 기도는 사람들이 봐 준 것으로 그 상을
이미 받았다고 가르칩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하나님으로부터 상을
받는 기도가 되게 합시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께 응답의 소원을 두면
하나님은 분명이 우리의 구하는 것을 주실 것입니다.
그 응답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것입니다.
-두레박에서-
♡주의 사랑으로 오늘도 행복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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