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미련한 장로의 교회 사랑
담임목사에게 반기 들었다는 이유로 교회에서 쫓겨난 사연
박한모(가명) 장로는 눈물이 많았다. 인터뷰 도중 교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제 서른 갓 넘은 기자가 너무 일찍 세상에 찌든 탓일까. 쉰을 넘긴 어른의 눈물은 낯설었다. 박 장로를 처음 만났을 때 그 눈물의 이유를 헤아릴 수 없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눈물의 의미를 조금 알게 됐다.
아버지의 신앙을 이어받아
2005년 4월 10일. 박 장로는 지금도 그날을 잊지 못한다. 오십 평생 신앙생활 가운데 드디어 장로가 된 날이기 때문이다. 그날을 회상하는 박 장로의 눈가에 웃음이 번졌다.
"교회가 제 삶의 전부입니다. 아버지의 신앙을 이어받아 예수님께, 교회에 충성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설레었습니다. 그동안 하나님께 받은 것을 교회에 되돌려 줄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박 장로가 종이 한 장을 건넸다. 그가 장로 임직식을 앞두고 교회 소식지에 기고한 '선비 신앙을 갖게 하소서'라는 제목의 글이 실려 있었다.
"대나무 같은 선비 신앙을 가지고 싶다. (중략) 주님! 혹독한 추위에도 움츠리거나 가던 길을 중단하지 않게 하시고, 찌는 듯한 무더위에도 흐트러지거나 길 위에 넘어지지 않게 잡아 주소서. 화창한 날에도 제자리를 지키며 가야 할 길로 곧게 나가는 대나무 같은 선비 신앙을 갖게 하시어 진정한 종으로 사용되게 하옵소서."
선비 신앙, 시험대 위에 오르다
올곧은 선비 신앙을 갖게 해 달라는 박 장로의 기도가 응답된 것일까. 장로가 된 후 참석한 첫 당회 때부터 그의 선비 신앙이 시험대 위에 올랐다. 당회원들이 이용하기 위해 5,000만 원 상당의 콘도 회원권을 구입하자는 안을 담임목사가 냈다.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장로들은 담임목사의 눈치만 살폈다.
박 장로가 혼자 반대했다. 모든 교인이 사용하는 것도 아닌데 헌금으로 콘도 회원권을 산다는 발상이 이해가 안 됐다. 박 장로는 당회에 한 번 참석했을 뿐이지만 그동안 교회가 어떤 식으로 운영됐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날부터 담임목사의 눈 밖에 난 것 같다고 했다.
"당회원이 되고 보니 교회가 누구를 중심으로 돌아가는지 눈에 보이더군요. 돈 있는 사람,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대접받습니다. 담임목사가 인사하는 자세부터 다르지요. 심방도 돈 있는 사람에게는 자주, 먼저 찾아갑니다. 반면 가진 것 없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머물러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들을 찾지 않습니다."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이어졌다. 2007년 말 당회 때는 공동의회를 폐지하자고 담임목사가 제안했다. 교회 재정을 교인들에게 상세히 알리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도 박 장로 혼자 반대했다. 박 장로가 이 사실을 교인들에게 알리겠다고 당회원들에게 말하고 나서야 철회됐다.
담임목사와의 갈등 폭발
지난해 5월, 일방적으로 교회를 운영하던 담임목사와 이에 맞서던 박 장로의 갈등이 폭발했다. 당시 장로를 선출하기 위한 공동의회를 앞두고 있었다. 담임목사가 장로 선출 자격의 연령 제한을 수정하자고 했다. 자신이 염두에 둔 특정인을 뽑기 위해 그 사람의 조건에 맞추기 위한 조치였다. 박 장로는 회의 중에 "이런 식으로 교회를 운영한다면 더 이상 교회가 발전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교회를 사랑하고 염려하는 마음에서 내뱉은 말이 오히려 자신에게 칼이 되어 돌아왔다. '교회가 발전하지 못한다'는 말이 '교회를 저주했다'는 말로 둔갑했다. 박 장로를 치리하기 위한 당회가 열렸다. 박 장로는 치리가 부당함을 이야기했지만, 담임목사와 당회원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면직됐다.
"당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예배에 계속 참석했습니다. 자기가 궁지에 몰렸다고 다른 교회로 금방 옮기는 것은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교회를 섬기라고 장로로 세움을 받았으면 끝까지 섬겨야죠."
그런 박 장로를 교회는 매몰차게 밀어냈다. '교회를 떠나라'는 문자가 날아들었다. 예배를 마치고 부교역자, 장로들이 박 장로와 인사하기를 거부했다. 대신 "회개하세요"라고 말했다. 담임목사를 비롯한 교역자들은 설교할 때마다 "교회에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은 사탄"이라고 했다.
수모와 치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대들거나 반박하지 않았다. 그 괴롭힘을 어떻게 참아 냈느냐고 묻자 박 장로는 '죽음'을 언급했다. 그는 "하나님이 부르면 언제든지 (저 세상으로) 가겠다는 각오로 견뎌 냈다. 어려운 때일수록 주님만 붙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어느 때보다 악착같이 기도하고 예수님께 매달렸다"고 했다.
박 장로를 가장 괴롭힌 건 자신 때문에 겪는 가족들의 고통이었다. 아내에게도 교회를 떠나라는 압력이 들어가고 '밤길을 조심하라'는 문자가 날아왔다. 박 장로는 "내가 하나님 보시기에 떳떳하다는 것을 가족들이 믿어 주었기 때문에 그나마 마음의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증오가 아니라 사랑을 택하다
박 장로는 2009년 9월 27일에 교회에서 쫓겨났다. 주일 예배 시간이었다. 박 장로가 교회 현관에 들어서자 장로와 부교역자, 집사들이 막아섰다. 이들은 비켜 달라고 요구하는 박 장로를 현관 밖으로 끌어냈다. 그 이후 교회에 발길을 끊었다.
쫓겨난 이후에도 박 장로는 교회에 대한 사랑을 접지 않았다. 담임목사와 교회에 대한 미움보다 안타까움이 더 컸다. 박 장로는 "쫓겨나던 날, 교회를 바로 세우는 것은 이제 하나님 몫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교회에서 치리를 받을 때쯤 눈여겨본 교회가 있습니다. 같은 교단에 소속된 목회자들에게 미움 받는 목회자가 담임하는 교회였죠. 교회를 옮기기 얼마 전부터 그 목회자의 설교를 챙겨 들었습니다. 나처럼 억울한 처지여서인지 설교가 위로가 되더군요. 쫓겨난 다음 주일에 그 교회에 출석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향한 박 장로의 사랑이 짝을 만났다. 그 교회는 박 장로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헌금 봉투에 헌금하는 사람의 이름과 금액을 쓰지 않아 교인들이 열등감에 시달리지 않게 하는 작은 것도 박 장로에게는 크게 다가왔다. 교회 재정도 투명하게 관리됐다. 담임목회자는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 눈빛, 말투에 차별이 없었다. 교인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교회에 새로 등록하는 사람을 환영하는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담임목사가 새 등록자들과 일일이 악수했다. 자신의 차례가 되자 박 장로가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갑자기 목사가 박 장로를 끌어안았다. 목사와 박 장로의 가슴이 닿았고, 목사는 박 장로의 등을 토닥였다. 이전 교회에서 겪었던 마음고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 자리에서 눈물을 쏟았다.
박 장로는 지금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박 장로는 이 교회에서 구역장을 맡았다. 구역 모임을 인도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장로라고 대우해 주는 사람이 없어도 교회다운 교회에 다닌다는 것만으로 흡족하다. 긴 마음고생을 한 끝에 그의 신앙은 제자리를 잡았다.
박 장로와 같은 일을 겪으면 마음에 쓴 뿌리가 자랄 만도 하다. 하지만 박 장로는 자신을 내친 교회와 목사를 원망하거나 저주하는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교회를 위해 기도한다고 했다. 인터뷰가 끝날 때쯤 이유를 물었다. 박 장로는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제가 저를 해한 사람들을 미워하거나 인간적인 방법을 써서 복수를 할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그것은 예수님이 원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 교회를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은 기도로 그 교회를 돕는 것이죠. 제가 겪은 시련은 주님이 주시는 훈련 과정일 뿐입니다." (2010.7.29.뉴스앤조이/백정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