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은혜/교회법·특별기고

교회법과 사회법

에바다. 2010. 7. 30. 12:25

                                            교회법과 사회법  

 
   1170년 영국 캔터베리 대성당, 대주교 토마스 베케트가 네 명의 기사들에게 도끼로 맞아 죽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전에도 대주교가 암살당한 경우는 있지만 자국민에게 그것도 성당 안에서 도륙을 당한 적은 없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가? 거기에는 교회와 국가, 교회법과 사회법이라는 오래된 갈등이 있었다.


   당시 영국에는 ‘성직자특권법’(Beneit of the Clergy)이 있었는데, 이 법은 국가 반역죄 외에는 어떠한 범죄도 교회법정에서만 재판을 받을 권리를 주장할 수 있었다. 살인, 절도, 강간, 약탈, 폭행, 노상 강도짓을 해도 자신이 성직자라는 사실만 증명하면 세속법을 피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당시 영국의 왕 헨리 2세는 법 앞에 누구나 평등해야 한다는 정의의 관점에서 ‘범죄한 성직자’도 국법으로 다스리기를 원했다. 하지만 교회는 성직자의 범죄를 국가와 교회 사이의 권위의 문제로 보았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다루기 원했다. 특별히 토마스 베케트는 국가가 성직자를 처벌하면 교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죄질이 나쁜 성직자들이 계속 생겨나는데도 국가에서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게 되자, 왕은 1164년 공의회를 소집하여 왕의 허락이 없는 로마에의 상소 금지, 외국여행 금지, 그리고 범죄한 성직자는 평신도로 강등시키는 법안을 마련했다. 교회의 보호를 받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전운이 감돌기 시작한 즈음 분쟁은 교회 땅의 소유 문제라는 사소한 사건에서 일어났다. 이 일로 베케트는 6년이나 피신해서 지냈고, 더욱 완고한 사람이 되어 절대로 “하느님께 속한 것을 시저에게 넘겨주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 다시 돌아 오는 길에 그는 국가에 충성하고 있는 주교들의 파면장을 로마 교황에게 받아왔다. 이러한 베케트의 행동으로 괴로워하는 왕을 보고, 충성심 강한 기사들은 결국 그를 해치게 된 것이다.


   베케트의 살해소식은 당시 그리스도교 전체에 큰 충격을 주었고, 민심은 왕에게 등을 돌렸다. 결국 왕은 로마 교황에게 무릎을 꿇고 공개적인 보속고행을 치루었으며, 베케트는 3년 만에 성인으로 시성되어 온 세상에 명성이 퍼졌다. 베케트의 사당이 세워진 캔터베리 대성당은 그 이후 가장 유명한 순례지가 되었다.

 
   “성인과 순교자는 무덤에서 통치한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엘리어트(Eliot)가 이 사건을 배경으로 쓴 <대성당의 살인>에서 남긴 말이다. 또 초서한 소설 <캔터베리 이야기>도 베케트의 무덤을 향하는 순례객들을 소재로 한 것이다.


   오늘날도 교회와 국가는 갈등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성직자의 범죄가 사회와 국가의 법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지만,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논란이 되었다.


   특별히 2008년 감리교 감독회장으로 선출되었다가 직무가 정지된 김국도 목사의 경우도 그러하다. 복잡한 이야기를 생략하면, 쟁점은 사회법을 어긴 후보의 자격 문제였다. 법원은 자격이 없다고 판결했지만, 김 목사의 지지자들은 “교회법이 사회법에 우선한다.”고 거부하며, 갈등의 불씨를 꺼지 않았다.


   이뿐만 아니다. 90년대 부산영락교회의 교회분열건에 대한 판결, 기독교대한하나님의 성회의 총회 명칭 상표권 독점 사용건 판결 등 교단 내부에서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 갈등을 사회법의 권위에 호소하여 해결하는 양상을 보였다.


   따지고 보면 예수님도 교회법이 아니라 사회법의 적용을 받아 십자가형을 당하셨다. 제사장과 율법학자들은 율법에 따라 ‘거짓 예언자’라는 죄목으로 기소했지만, 통치자 로마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유대의 종교법이지 로마의 사회법이 아니었다. 그래서 하룻밤 사이에 예수님을 ‘왕을 사칭한 자’라는 죄목으로 바꾸어 그를 정치범으로 만들어 버렸다. ‘유대인의 왕’이라 조롱 섞인 가시관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라.”(마태 22:21) 교회와 국가 사이의 권위에 관해 예수님이 남긴 유명한 말씀이다. 하지만 오늘 우리 교회는 국가나 하느님께 돌리려 하기 보다는 자신이 가지려고 하는 것 같다.


   교회법과 사회법 사이의 갈등은 근본적으로 복음과 문화의 갈등이다. 복음이 문화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토착화(inculturation)라고 한다. 진정한 토착화를 위해서라도, 교회는 복음적 가치 위에서 스스로 자정(自靜)능력을 회복해야 하지 않을까? 그 어떤 법으로도 안 된다. 이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2010.7.22.주간기독교/이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