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은혜/교회법·특별기고

구속과 처벌

에바다. 2010. 8. 13. 15:51

                                        구속과 처벌

 

   김형선 변호사 (전 대법관) 
 
   구속과 처벌은 엄연히 다른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 차이점에 대한 인식의 결여로 말미암아 많은 논란과 갈등 나아가서 형사사법절차의 혼선을 야기하는데 까지 이르고 있다.


   구속은 형사처벌 즉 형벌의 일종인 징역이나 금고 등 자유형과 같이 사람의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여 속박하는 점에서 유사하기 때문에 이를 혼동하여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언론매체나 심지어 법률사무 종사자들까지도 구속을 형사처벌이라는 개념으로 사용하는 일이 매우 흔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헌법 제12조에서 규정하는 바와 같이 구속과 처벌은 전혀 별개의 개념이라는 것을 명백히 하지 않으면 불구속수사의 원칙이라든지 헌법 제27조가 명정한 무죄추정의 원칙 등은 유명무실화되고 국민의 신체의 자유를 말하는 것은 한낱 구두선에 그치고 말 것이다.


   구속은 아직 유죄로 확정되지 아니한 피의자 또는 피고인을,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하지 못하도록 일정한 장소에 강제로 끌고 가거나(구인) 가두어 두는(구금) 임시적 잠정적 조치이고, 형사처벌은 법원이 공판절차를 거쳐 유죄로 확정된 피고인에 대하여 해당법조를 적용하여 형을 선고하는 일이므로 양자는 법률적으로 전혀 다른 개념이다.


   그런데도 이러한 기초적 개념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우리는 매우 선진화된 법률(형사소송법) 규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형사사법절차의 현실은 아직도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십수년전 현직에 있을 때 영장담당 판사들로 하여금 영장발부 여부에 관하여, 대체로 영장청구서에 피의사실로 기재된 죄의 경중에 따라 결정하여 온 당시까지의 실무관행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과연 법률규정에 맞는 것인지 그렇지 않다면 지금부터라도 법률규정에 맞도록 영장발부를 하여야 할 것이 아닌지 한번 진지하게 토론을 하여 보라고 하였다.


   토론을 마친 후 이를 주재한 판사가 와서 하는 말이 의견이 반반으로 나뉘었다고 하였다. 그래서 종전의 실무관행에 따르는 것이 옳다는 의견을 내세운 근거를 무엇이라고 하더냐고 묻자 그 의견을 지지하는 판사는 중한 죄를 지은 사람이 거리를 활보하는 것을 국민의 법감정이 어떻게 용납 하겠느냐 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이에 필자는 그에게 피의자가 중한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누가 벌써 확정하였는지 물어보지 그랬느냐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때에 일부 판사들조차도 피의사실과 공판절차에 의하여 확정된 범죄사실을 혼동하여 구속을 처벌의 일환으로 오인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근자에 언론에서 수사기관의 구속영장 청구를 ‘형사처벌’ 또는 ‘사법처리’라고 하면서 수사기관이 피의자에 대하여 구속영장을 조만간 청구할 방침을 밝혔다는 보도를 자주하여도 또 수사기관이 조만간 피의자에 대한 ‘형사처벌’의 수위를 정할 것(구속영장청구 여부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임)이라는 보도를 접하여도 조금도 이상하게 느끼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구속에 관한 법률규정은 구속은 피의자 또는 피고인의 지위에 있는 자가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그것 외에 일정한 주거가 없거나 증거의 인멸 또는 도망의 염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하여 구속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아무리 범죄혐의가 있고 그 혐의를 받고 있는 범죄가 아무리 중하더라도 피의자가 일정한 주거가 있고 증거의 인멸이나 도망의 염려가 없다면 구속할 수 없다는 것이고 이러한 구속사유가 충족되지 않는데도 구속영장을 발부하여 구속하게 한다면 그 구속은 부적법한 구속일 수밖에 없다.


   즉 구속은 피의자가 증거인멸이나 도주를 하는 것을 방지하는 소극적 작용을 위하여 필요한 것이지 피구속자로부터 유죄의 진술을 받아낼 수 있게 하는 적극적 작용을 위하여 허용되는 것은 결코 아니고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되는 피의자에 대한 처벌은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세인의 관심을 끄는 사건의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청구가 기각되면 증거인멸이나 도망의 염려라는 구속사유는 아랑곳하지 않고 수사기관은 물론이고 언론매체들도 마치 죄인을 무죄방면이라도 한 것 같이 반응하는 것은 구속을 처벌과 혼동하는데서 비롯된 현상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작금의 이러한 경향은 근본적으로 법원에 그 책임이 있다고 생각된다. 우선 법원 스스로 영장발부의 가장 중요한 기준을 혐의사실이 실형선고가 예상되느냐의 여부에 두어 왔고 한걸음 더 나아가 지난해에는 한 법원에서 구속영장 발부의 기준으로 실형기준의 원칙을 강화한다는 내용을 공개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은 어느 법률규정에도 그 근거를 찾아 볼 수 없는 그야말로 법치주의에 반하는 내용이다. 유죄의 확정여부에 대한 공판절차가 매듭되지 않은 단계에서 실체법상의 양형 요건을 따져 실형선고가 예상되는지 여부를 영장발부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은 그 자체가 법률의 규정에 반하는 것이다. 법률은 유·무죄의 확정이나 실형선고 여부와 관계없이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염려가 있으면 구속할 수 있고 반대로 그러한 염려가 있다고 인정되지 아니하면 아무리 혐의사실이 중하여 그것이 유죄로 확정되는 경우에 실형의 선고가 예상되더라도 그 피의자를 구속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것이다. 물론 중한 범죄혐의자는 상대적으로 도망할 염려가 그만큼 크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으나 혐의사실이 중하다는 이유만으로 구속해야 한다는 법률규정은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래 법원은 혐의사실로 적시된 범죄가 중하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발부하고 경하다고 하여 이를 기각하여 왔고 그것이 본안 사건의 결론에 까지 영향을 미쳐 불구속이면 비실형이라는 이상한 인식이 뿌리깊게 자리잡게 되었다.


   검찰이 혐의사실이 중한 범죄에 해당하는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의 청구가 기각되는 경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종래에 법원이 불구속 피고인에 대하여는 일반적으로 실형의 선고를 잘 안하는 경향을 보여 온 것이 그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리하여 형사사법절차에 있어서 초미의 관심사는 유죄냐 무죄냐 또는 선고형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 아니라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느냐 아니하느냐 청구한 구속영장이 발부되느냐 기각되느냐 하는 것이고 따라서 형사사법절차의 핵심은 공판절차가 아닌 수사절차에 있는 것처럼 여겨지게까지 되었다.


   그 비근한 예의 하나가 연전에 당시의 검찰총장의 사임이라는 예기치 못한 결과를 낳은 어느 대학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의 자초지종이다. 위 사건은 검찰이 피의자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겠다는 것을 법무부장관이 불구속수사를 하도록 지시함으로써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것인데 그 후 당해 피의자는 불구속으로 기소되어 1, 2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구속, 불구속의 결말 외에는 그 재판결과는 물론이고 기소여부조차도 세인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그 사건에서 오직 피의자의 구속 여부만이 형사사법절차의 유일한 관심사였다. 수사는 형벌청구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사전절차일 뿐인데 막상 핵심인 재판결과가 유야무야한 것이 되고마는 것은 법원이 자초한 비정상적인 현상이라고 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오늘날 신문·방송 등 언론매체에서는 구속을 형사처벌 또는 사법처리(사법처리라는 용어는 종래의 국어사전에는 없는 신조어이고 사법처분은 사법기관인 법원이 하는 처분 곧 재판이며 수사기관은 사법기관이 아니다)라고 거리낌없이 사용하고 있다.


   만일 법원이 종래에 피고인의 구속여부에 관계없이 죄질과 범정 등 양형요건을 충실히 심리하여 그 확정된 범죄사실과 양형요건에 따라 엄정하고 수긍이 가는 형을 선고하여 왔다면 위와 같은 형사사법절차의 파행과 용어의 혼란은 없었을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이러한 구속에 관한 인식의 변질은 여러 가지 부작용을 일으키게 되었는데 그 중 한가지가 수사기관이 구속하고자 하는 또는 구속한 피의자에 대하여 한다고 하는 강도 높은 밤샘조사이다. 피의자 또는 피고인은 진술거부권이 있고 자기에게 유리한 진술을 할 권리가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데 누가 밤잠을 안자면서 강도 높은 밤샘조사에 자발적으로 응할 사람이 있겠는가.


   강도 높은 밤샘조사는 바로 헌법이 금하는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지 실로 의아한 생각을 금할 수 없는데 뉴스시간에 피의자가 강도 높은 밤샘조사를 받는다든지 받았다는 보도가 아무리 반복되어도 이에 대하여 비판하거나 이상히 여기는 시각은 없는 것 같다. 그것은 구속을 처벌이라고 인식하는데 기인한 것이 아닌지, 즉 왕조시대에 중죄인이 국문을 당하는 것쯤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이 아닌지 생각된다.


   만일 피의자를 밥을 굶기면서 조사하였다면 언론이나 세인의 반응이 어떠할지 궁금하다. 밥을 한 끼 굶는 것 보다는 하룻밤 잠을 못자는 것이 훨씬 고통스럽다는 것은 누구나 경험한 일이다(이렇게 하여 작성된 피의자 신문조서는 어느 것이나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없는 것이다).


   구속은 죄인을 잡아 가두어 처벌하는 일이 아니므로 수사기관은 영장청구를 함에 있어서 혐의사실과 이를 의심할만한 상당한 이유뿐만 아니라 어떤 이유에서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는 것인지 또 도망할 염려가 있다고 보는 구체적 이유가 무엇인지를 법원이 납득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기재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였는데도 법원이 이를 기각하였다면 법원에 대하여 불만을 토로한다 해도 수긍이 가겠지만 사안의 중대성만을 내세우는 것은 법률 집행기관이 취할 옳은 태도라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구속을 할 때에는 반드시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도록 헌법이 규정한 취지가 무엇인지 영장발부를 담당하는 법관과 영장청구를 하는 검사는 물론이고 법의 집행을 감시하는 언론이나 일반 국민들도 한번쯤 깊이 생각해보고 영장제도야말로 가장 중요한 국민의 신체의 자유를 권력의 침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영국의 마그나카르타에서 유래한 금과옥조임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구속이 피의자로부터 혐의사실을 실토 받고 증거를 캐내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라면 헌법이 굳이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게 할 필요가 없고 검사로 하여금 영장을 발부하게 하였을 것이다. 검사로 하여금 법관의 영장을 발부받아야 비로소 구속을 할 수 있게 한 헌법규정이야 말로 국가권력을 분립시켜 상호견제하게 함으로써 국민의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고자 마련한 중요한 장치라는 것을 되새겨야 할 때다. (2007.11.15.굿소사이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