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법은 죽은 자들의 살아있는 이야기
교회법, 전문적인 법원과 법학문헌들을 창조
김정우
오늘날 개신교에서 교회법이라고 하면 그것은 종교개혁 이후에 주로 교회 내부의 문제를 규율하는 교회 헌법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중세 교회법(Canon Law)이 세속법의 체계와 내용에 영향을 주었던 시기가 존재한다.
이 문제는 체계 또는 형성의 측면에서의 영향과 개별적인 제도적 영향으로 구분해서 고찰할 수 있다. 이번 기회에는 교회법이 세속법에 끼친 개별적인 제도들에 대한 고찰보다는 세속법의 체계가 확립되어 있지 못한 시기에 교회법의 체계성이 세속법의 체계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는 측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11세기 후반과 12세기 전반에 서구에서는 교회가 황제들과 왕들 그리고 봉건 영주들로부터 독립되어 로마 주교의 절대 군주적 권위에만 복종하는 법적 실체로 형성되었다. 1075년에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는 교회의 완전한 정치적, 법적인 독립을 선포하고, 동시에 서양 기독교 제국의 모든 성직자에 대해 교황 자신의 최고의 우월한 정치적, 법적 권위를 널리 공포하였다.
이제 로마 가톨릭 교회는 체계적인 법의 형태가 필요하게 되었고, 이것은 12세기와 13세기에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대강 1140년경에 그라티아누스에 의해 쓰여진 거대한 학술 논문이었는데, 이후에 계속해서 나타난 법학자 교황들이 수 백 가지의 새로운 법을 널리 공포하였다. 물론 그라티아누스보다 훨씬 오래 전에 교회의 canon들이 있어 왔으나 이것들은 여러 종류의 흩어진 결정들, 신조들, 가르침들과 그 밖의 것들로 대부분 신학적 특질을 갖고 있었고, 여러 공의회와 주교들이 개인적으로 펴낸 것으로, 종종 연대기적으로 정리된 모음집 안에 있었다.
그러나 12세기와 13세기의 교회법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과 같은 체계화된 형태를 가진 교회법규, 형사법, 가족법, 상속법, 재산법, 계약법은 없었다. 이 교회법은 서구의 최초의 근대적인 법체계였고 유럽의 모든 나라에 널리 퍼졌다.
교회법은 실제로 평신도들의 생활의 대단히 많은 국면까지 규율하였는데, 교회 법원은 가족법, 상속과 다양한 영적인 범죄들에 대해서 일반인들에게도 배타적인 재판 관할권을 가지고 있었고, 계약, 재산권 등의 문제들에 대해서도 세속 법원과 동시에 재판 관할권을 가지고 있었다.
교회법과 함께 다양한 형태의 세속법이 출현하였는데, 바로 이 시기 12세기와 13세기 동안에 세속법이 합리화되고 체계화되기 시작했다. 교회법과의 경쟁으로 다양한 세속법의 형태들이 황제들, 왕들, 대영주들에 의해 만들어졌고, 도시와 촌락에서도 점차로 만들어졌으며, 큰 국제적인 시장에서 무역하는 상인들 사이에서도 만들어졌다.
교회법의 발전은 세속 권력으로 하여금 전문적인 법원과 법학문헌들을 창조했고, 부족과 지역과 봉건적 관습들을 변형시켰으며, 봉건적 재산 관계와 폭력 범죄, 상거래 그리고 많은 다른 문제들을 규율하기 위한 법체계를 만들도록 자극하였다.
따라서 서구인들에게 근대적인 법체계가 어떤 것인지를 처음으로 가르쳤던 것은 교회였다. 교회가 처음으로 서로 갈등관계에 있는 관습들, 법령들, 사례들 그리고 가르침들이 분석과 종합에 의해서 조율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이것은 성서의 모순되는 본문들을 변증법적으로 정리한 아벨라르의 방법이었다. 이러한 방법들에 의해 교회는 폐기된 로마법의 연구를 다시 부흥시켰다.
교회법학자들은 새로운 규칙들과 법리들을 유스티니아누스 법전, 성서, 교회의 교부들, 아리스토텔레스와 게르만 관습들의 기초에 근거해서 만들어 내었다. 그들은 권위 있는 텍스트들을 존중하였으나 그 텍스트들에 주석을 달고, 거기에 또 주석을 달았다.
거대한 고딕 성당이 수 세기에 걸쳐 건축되는 것처럼, 거대한 법적 텍스트들이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보는 눈으로 건축되고 또 재건축되어졌다. 이렇게 해서 교회법의 내용들 즉 결혼, 상속, 불법행위, 범죄, 계약, 재산권, 형평, 소송 절차 등이 서구의 세속법 체계 속으로 유입되어 사실상 서구의 법전통이 창조되었다.
교회법역사는 죽은 자들의 살아있는 이야기
이제 교회법에 대한 지나간 승리의 기억은 오늘날 교회법과 세속법의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교회법 자체에 대한 새로운 정체성을 일깨워 주리라 생각된다. 다시 말해 교회법으로부터 얻게 되는 역사적 통찰은 살아있는 자들을 위한 죽은 이야기(dead story for the living)가 아니라 죽은 자들의 살아있는 이야기(living story of the dead)로써 오늘날 개신교 교회법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할 수 있다고 본다. (2011.10.27. 로앤처치 / 황규학)
김정우박사는 교회법연수원회원으로서 홍익대법대를 졸업하고 숭실대학원에서 교회법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법사상사가 그의 전공이다. 조만간 법과 신학을 접목해서 교회법을 보다 체계적으로 발전시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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