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은혜/신앙,시사,목양 칼럼

성탄의 본질을 회복하자

에바다. 2011. 12. 24. 10:21

                성탄의 본질을 회복하자    


   박보근목사


  성탄일을 12월 25일로 추정한 사람은세기 초에 로마의 포르투스 주교로 사역했던 히폴리투스(Hippolytus-Romanus)다.당시에 가장 박식했고 수많은 저서를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후대에까지는 명성을 떨치지 못한 그가 예수님의 수태고지일 및 십자가 수난일로 추정되는 3월 25일로부터 270일에 해당되는 12월 25일을 성탄일로 추정하였던 것이다.


   6세기에 이르러 로마의 신학자인 디오니시우스(Dionysius-Exiguus)는 이 12월 25일을 성탄일로 고정시켰는데 그는 역사적인 모든 기록을 예수님의 출생연도를 기점으로 하도록 창안한 사람이다. 그는 로마 기원 754년을 서기 원년으로 정하고 1월부터 12월까지의 월력을 만들 때 12월 25일을 성탄일로 고정시켰고 로마 황제 유스티누스 재위 마지막 해인 527년에 발표하였다. 이것을 ‘디오니시우스 주기’라고 한다. 이 ‘디오니시우스 주기’는 그 뒤로 유럽 전역에서 점진적으로 사용되었고 816년에 ‘켈세아 교회 회의’에서 공식으로 채택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디오니시우스가 계산한 예수님의 탄생 연도가 최소한 4년 이상 착오가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그는 헤롯의 죽은 해를 로마 기원 754년으로 계산했는데 현대 사가들의 연구에 의하여 750년으로 확인된 것이다. 결국 예수님은 주전 4년에 탄생하여 주후 29년에 십자가의 수난을 당하신 것이 된다.


   이처럼 예수님의 탄생 년월일에 대하여 성경은 침묵하고 있다. 그것은 탄생하신 날을 신성시할 것이 아니라 탄생 자체를 중요시해야 한다는 의미로 여겨진다. 이제 우리는 성탄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며 본질을 회복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우선 성탄은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자기 비하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천국의 모든 영광을 버리시고 성육신 하신 예수님께 머리 숙여 감사하며 영광을 돌려야 한다. 성탄절의 기쁨은 구원 얻음 때문이다. 이 기쁨은 모든 것을 초월한 기쁨이다. 어떤 육적인 곤고함도 이 기쁨을 빼앗을 수 없다. 적어도 성탄을 기념하는 성도들에게는 이런 기쁨과 감격이 있어야 한다. 동시에 우리에게는 구원을 위한 거룩한 도구라는 사명감이 회복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 사명을 다하려면 낮고 천한 인간의 몸으로, 그것도 마굿간에서 태어나신 의미를 알아야 한다. 구원사역을 위하여는 낮아짐이 필요함을 보여주신 것이다. 요즘 한국교회는 구원을 외치지만 낮아짐의 삶은 외면하고 있다. 교권다툼으로 인하여 전도의 문이 닫히고 믿음 약한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버리는 안타까운 실정에 처해 있다. 교회 지도자들이 명예욕이나 권력욕을 버리지 않는 한 도무지 회복을 기대할 수 없다. 모든 것을 버리고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재발견하는 성탄절이 되어야 하겠다.


   성탄의 또 하나의 본질은 사랑이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성탄으로 입증된 것이다.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충만하게 받았다. 그동안 수많은 혜택을 누리면서 교회가 성장해 왔다. 그런데 우리는 받은 사랑을 나누질 못했다. 이것이 교회의 폐단이다. 성탄은 한국교회를 향하여 사랑을 명하고 있다. 용서와 화해를 명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가 비대해지면 자연히 강력한 리더십이 요구되기 마련이다. 그 속에 적대감이 생기고 갈등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분쟁으로 발전하면 안 된다. 이제라도 서로를 용서하고 화해해야 한다. 진정 교회를 위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면 사적인 감정이나 욕심을 버려야 한다. 끝까지 하나 되지 못하고 다툼이 거듭된다면 모두가 망할 수밖에 없다. 강력한 사랑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자. 몸(교회)의 상처들 때문에 신음하며 눈물을 흘리고 계신 예수님을 생각하자.


   우리는 모두가 죄인이다. 누구도 다른 사람을 정죄하거나 비판 할 수 없다. 형제 눈 속에 있는 티보다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먼저 발견하고 빼내야 한다.


   성탄의 또 하나의 본질은 약속 성취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메시아의 탄생을 구체적으로 약속하셨다. 그 약속이 성취된 것이다. 이처럼 약속의 말씀을 하나도 어김없이 이루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약속을 기다리며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며 사는 영적 지도자들은 또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 특히 공회 앞에서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신뢰를 얻을 수 있고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다.


   구제헌금을 간청해도 반응이 없는 것은 총회가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지난 총회 때 임원들의 다짐 선언은 신선한 충격이었고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러나 얼마 전 발표된 특별위원회의 진용을 보고 실망감이 없지 않았다. 특별위원회에 임원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발표된 명단을 보면 임원들의 이름이 이중삼중으로 들어가 있다. 아무리 전례에 따라 기존의 임원 자리를 메웠다 하더라도 총회 규정을 적용하는 것도 아닌 마당에 임원들의 이름이 곳곳에 눈에 띄는 것은 아쉬움이 있다.


   2000년 전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은 고초를 당하면서도 구원의 약속을 지키고 삶의 모범을 보이셨다.


-기독신문 기독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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