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심방
박춘수
신년을 맞이하여 요즘 성도님들의 가정과 직장의 심방을 시작하였습니다. 오래된 교회의 역사만큼이나 우리 교회의 성도님들의 거주하는 집이나 직장은 다양합니다. 가깝게는 교회에서 걸어서 10분 이내의 거리에 계시는 분도 있지만 브루클린, 롱아일랜드, 뉴저지에 까지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과는 달리 하루에 여러 가정을 심방하기에는 무리가 있기에 적은 수의 가정을 잡아서 충분하게 시간을 갖고 교제를 하면서 심방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심방의 기억이 있습니다. 처음 교회에 나오신 부부의 가정이었습니다. 교회에 나오기까지 열심히 절에 다녔던 불교신자였습니다. 그러다가 전도를 통해서 교회를 나오게 되어 심방을 하게 되었습니다. 심방 시간을 정하고 마침내 나와 아내가 함께 그 가정의 안방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가 부부가 저에게 큰절을 하려고 했습니다. 나는 손사래를 치면서 심방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라고 하자 절을 중지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심방을 위해 새벽에 일어나 깨끗이 목욕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심방을 위해서 새옷을 입고 준비를 했다는 것입니다. 절을 다녔던 습관대로 목사를 맞이한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나이 쉰 살을 넘은 그 부부가 좀 무지하였지만 어린아이같은 순수한 모습으로 심방을 받던 그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웠습니다.
요즘 현대의 성도들은 심방을 받는 것을 꺼려합니다. 자신의 가정과 사생활이 노출이 되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국 서울의 강남의 큰 교회를 목회를 했던 어떤 목사님은 더 이상 현대 목회에서는 심방은 필요하지 않다고 강조하면서 설교목회를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설교 중심의 목회를 통해서 교회가 크게 성장했습니다. 지금도 한국의 대도시의 경우에는 대심방 같은 전통은 사라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기독교의 출발의 역사의 중심은 가정이었습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도 마가의 다락방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초기 기독교 성도들은 주후 2세기까지 집에서 모여서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물론 4세기경부터는 더 큰 모임이 시작되면서 큰 교회당이 생기고 중세시대가 되면서는 교회당을 중심으로 한 공적모임이 더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의 모임에서 목회자는 공적인 대그룹 모임을 통해서 설교를 선포하는 자이기도 하지만 한 사람 한사람을 돌보는 자입니다. 이렇게 목회자는 한 사람의 영혼을 대면하여 돌보는 사역을 속에서 성도들은 온전한 치유와 회복과 성장이 있습니다. 마치 의사들이 기술과 기계가 아무리 발전하여도 환자를 개별적으로 돌보아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함께 가정에서 모여 심방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예배를 드리는 것은 성도의 축복이요 특권입니다. 그 예배의 자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기회가 되기도 하지만 가정의 기도를 나눔으로서 교제와 사랑으로 서로 영적으로 연합하게 하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심방을 통해서 한 교회의 아름다운 연합과 나눔의 교제가 나눠주기를 소원합니다.
-교회넷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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