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기도와 신앙고백(눅 9 :18~20)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역에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정체에 대하여 물은
사건은 유명하다. 이때 베드로의 고백은
세 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 세 기록 중에 누가의 기록은 독특하게
예수님의 기도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긴밀하게 연결시키고 있다.
세 복음서의 기록을 보자.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가라사대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예 선지자 중의 하나가 살아났다 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가로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눅9:18-20)"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불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3)"
"예수와 제자들이 가이사랴 빌립보 여러 마을로 나가실새
노중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막8:27)"
위의 기록에 비추어 볼때,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이스라엘 최복단
헬몬 산 기슭에 위치함) 으로 가는 도중에 제자들에게
자신의 정체에 대하여 물은 것으로 나온다.
반면 누가는 장소에 대한 언급은 전혀 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따로 기도를 하고 있는 가운데 제자들에게
자신의 정체에 대하여 물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누가복음서는 주님의 정체에 관한 물음이
노중에 일어난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기도 중에
일어난 것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기도 언급은 우리로 하여금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기도의 관접에서 보여 준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기도를 하고 계신 가운데 자신의 대하여
물었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임을 여기서 본다.
마태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듣고
"이를 네게 알게 한 분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고
말씀 하셨다고 기록한다(마16:17).
베드르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는 누가가 언급한
예수님의 기도에 비추어볼 때. 예수님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다. 누가는 예수님의 기도를 미리 언급하여
예수님의 기도 응답으로 베드로가 예수님의 메시야적인
정체를 알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누가의 관점은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전적으로
긍정적인 시각에서 보게 한다. 예수님의 기도 응답으로
하나님께 베드로의 영안을 열어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를 고백하게 되었는데 베드로의
메시아관에 부족한 점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 마태와 마가는 예수님께서 예루샬렘에 올라가
받을 고난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 베드로가(이때 베드로는
이미 신앙 고백을 한 후였다)예수님을 만류하려고 했던
사실과 아울러 예수님의 호된 질책을 기록하고 있다
(마 16:21~23), 이것은 베드로의 메시아관에 부족한
점이 있었음을 지적한다.
그러나 누가복음에는 이런 내용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누가는 베드로의 신앙 고백에 어떠한 결함도
보고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것은 누가는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예수님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으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기도를 응답하셔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로 고백하게 된 것이니
기도 응답 자체에 문제가 있을 수 없다.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에 누가는 마태와 마가에 나오는
내용을 기록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 결과로 베드로가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주목한다.
예수님은 신적인 능력을 완전하게 구비하신 하나님으로
기도 없이도 제자들을 감동 감화시켜 그를 메시아로
고백하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기도없이 그들의 마음을
조절하여 그를 메시아로 믿도록 역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는 예수님의 기도가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낳았음을
보여줌으로써 어떻게 예수님의 기도가 제자들 하나하나를
신앙의 자리에 이르게 했는지 가르쳐 준다.
우리는 진지하고 간절한 기도 없이 인간적인 설득과
강요만으로 사람들을 예수 믿게 하려고 노력해 오지는
않았던가?
이미 믿었어야 할 사람이 믿지 않으면 화를 내고
역정을 내지는 안았던가?
믿어야 할 자녀들이(교회는 어쩔 수 없이 가지만) 여전히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지 못하는 것을
강제로 믿게 하려고 애쓰지는 않았던가?
예수님 자신도 제자들이 그를 메시아로 믿게 하는데
특별한 비법이나 비결이 없었다.
그에게도 기도의 인내와 눈물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오늘날 예수님과 같이 온전한 인격을 가지고 그렇게
쉬우면서, 아주 깊이 잘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예수님의 이러한 가르침으로도 사람들이
쉽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끊임없는 눈물릐 기도를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거룩한 자녀들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이 사실은 우리가 앞으로 보았듯이 왜 예수님과
사도들이 말씀 사역보다 기도에 더 우선으로 두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여기서 사역을 사역 되게 하고, 가르침을 가르침 되게
할 수 있는 요소가 기도임을 본다. 기도 없는 사역은
열매없는 사역이요,
기도없는 가르침은 가르침받는 자에게 불필요한
부담만 가져다주는 지식의 장식으로 전락하고 만다.
-예수님의 기도로 돌아가자에서-
♡주의 사랑으로 오늘도 행복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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