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산상 철야 기도(눅 6:12~13)
12제자 선택에 관한 기록은 마태,마가,누가복음에
모두 되어 있다. 이 세 기록 중 누가의 기록만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 가운데 12제자를 사도로 세우신 과정을
소상하게 기록하고 있다.
누가만 이를 예수님의 철야 기도와 연결하고 있다.
먼저 세 복음서의 기록을 보자
"이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눅 6:12,13)"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악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미라(마10:1)"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막3:13)"
위에 제시된 성경 구절에서 분명히 보여주듯이,
마태와 마가는 예수님께서 제자를 선택하기 전에
집중적으로 기도한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오직 누가만 예수님께서 밤새도록 기도하신
다음에 새벽에 제자들을 부른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누가는 12절에서 '기도'를 두 번 언급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기 위해서 산에 올라가셨고,
하나님께 기도하셨다.
특별히 12절에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셨다" 는
헬라어 본문 그대로 말하면 "하나님의 기도로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이다.
먼저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기도를 하나님의
기도로 소개한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기도' 라는
표현은 여기에만 등장하는 독특한 표현이다.
물론 이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기도이다.
이 독특한 표현을 통해서 누가가 의도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사로잡힌 기도를 하셨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기도하신 분은 예수님이지만,
그가 드린 기도는 자의(恣意)로 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목적으로 삼은, 하나님에게 사로잡힌 기도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기도'라는 말을 사용한 것으로
생각한다.
한 가지 더 지적할 것은 예수님의 기도 시간이다.
에수님은 산에서 몇 시간이나 기도하셨는가?
예수님이 기도하러 산에 올라간 시간은
초저녁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13절에 "날이 밝으매"
란 말은 이미 해가 뜬 것을 가리킨다.
이 두 사실과 함께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는 말은
에수님의 기도가 장시간 지속되었음을 보여준다.
초저녁에 시작하여 그 다음날 해가 뜰 때까지
적어도 11-12시간 정도의 긴 기도를 하셨음을 암시한다
이 기도야 말로 집중적이고 , 긴 시간의 기도이다.
에수님은 장시간 집중적으로 하나님께 매달렸던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기도를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도를
했다. 이 얼마나 하나님의 중심적인 기도인가!
누가는 기도의 내용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에 예수님께서 12사도들을
선택하신 것으로 보아 사도 선택을 놓고 하나님의
뜻을 묻고 확인하신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많은 부리들 가운데
(눅6:17) 하나님이 원하는 제자들을 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누구를 제자로 택하야 하는지 몇 명을
제자로 택해야 하는지, 제자 선택의 중요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해답을 집중적으로 깊게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으로 부터 확인해야 했다.
마태와 마가복음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쉽게 그의
사도 12명을 선정한 것같이 그려져 있는데 ,
누가복음에는 이 선택에 도달하기까지 예수님이
얼마나 피나는 기도를 하셨는지 나타나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던가?
기도 없이도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쉽게 분간할 수
있지 않은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인간의
모습으로 기도의 분투 끝에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얻고 12제자를 선택하게 되었다.
예수님의 12제자 선택은 실로 하나님의 자신의
선택이다. 도저희 융화될 수 없는 천차만별의 다양한
배경과 성품을 가진 그들을 택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어떤 일에든지 제일 먼저 나서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베드로, 계산적인 빌립, 얌전하고 사색가적인 요한,
의심 많은 도마, 부자였던 세리 마태, 제 힘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열심당원 시몬, 배반자가 된
가룟 유다, 어떻게 이렇게도 다양한 선택이 있을 수 있는가?
이들이 어떻게 신약의 신령한 12지파가 될 수 있을까?
서로 일치하고 하나가 될 수 없는 이들이 결국
사도행전에 이르러서 하나 되고 화목하는 사람들로
나온다. 그들은, 누가복음에서는 한심하나 사도행전에서는
하나님의 멋진 작품으로 등장한다.
몰론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자결함으로 메시야에
관한 시편의 예언을 성취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시69:26 ; 행 1:17~20)
예수님의 산상 철야 기도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첫째, 예수님의 기도는 집중적이고 끈기 있는 기도였음을
본다. 정말로 인내하는 기도이다. 응답을 받을 때까지
기도를 했으니 얼마나 인내를 요구하는 기도인지 모른다.
둘째, 그의 기도는 하나님의 기도였다.
하나님께 폭 빠진, 전적으로 하나님의 중심의 기도이다.
자신의 뜻을 미리 정해놓고 하나님께 결재받으려고
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으로 정하신 뜻을
구하고 그 뜻을 그대로 실천하신 기도이다.
하나님의 뜻 속에 자기를 배반하여 팔게 될 자 가룟 유다가
들어 있음을 예수님이 아셨을 텐데 얼마나 가슴이 쓰리고
아팠겠는가? 그를 뽑지 않고 다른 사람을 선정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그를 택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경륜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순종했다.
셋째, 예수님의 기도는 포기하지 않는 기도이다.
응답이 있을 때까지가 초 저녁부터 다음날 해 뜰 무렵까지
지속된 기도이다. 아마 그때까지 응답되지 않았으면,
어쩌면 응답이 있을 때까지 더 기도하셨을 것이다.
예수님이 나중에 말씀하신 과부의 기도 비유는
예수님의 이러한 기도 정신에 입각한 것으로 보인다
(눅 18:1-8) 이 산상 철야 기도는 항상 기도하고
실망치 않는 기도, 강청하는 기도의 모범이다(눅11:5-8)
넷째로, 예수님의 이 기도는 사도들의 기도의 표준이
되었다. 집중 기도를 한 다음에 12제자를 세웠던 예수님을
본받아 사돌들은 유다의 배반과 자살로 말미암아 모자란
사도를 보충할 때, 집중적인 기도를 했다(행1:24,25)
우리는 예수님의 이러한 기도에 비추어 볼때,
과연 오늘날 교회들이 기둥과도 같은 일꾼들을 세울때,
이러한 기도의 과정을 거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기도의 고뇌와 땀이 없이 뽑힌 일꾼은, 아마도 뿝아준
사람의 일꾼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일꾼이
될 수 없다. 목회자 가운데 일부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을 일꾼으로 뽑기보다는 자기가 원하는 사람,
자기의 뜻을 이루어 줄 사람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몰론 목회자가 철저하게 하나님의 중심으로 한다면
문제 될 것은 없다. 그러나 목회자가 하나님의 중심에서
떠나 있다면 ,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돈이 있건 없건, 일류 학교를 나왔건 못 나왔건,
출신 배경이 좋건 나쁘건, 하나님의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일꾼으로 뽑겠다는 절대적인 순종의 자세가
간절한 기도 속에 녹아 있어야 할 것이다.
간절한 눈물의 기도대신 맹렬하고 치열한 선거가
교회 뒷문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은 아닌가 냉철하게
검토해 봐야 할 것이다.
아울러 우리는 예수님의 하나님 뜻 중심의 기도를 보며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 일의 들러리러 세우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기도없이 이미 하고자 하는 일을 결정해 놓고
그 일을 강행할 수 있는 담력을 얻고자 기도의 탁자 위에
그것을 올려놓는 것은 아닌지 물어야 할 것이다.
나 개인을 향한 혹은 교회 전체를 향한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놀라운 설계와 뜻을 찾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기도는
기도의 탈은 쓴 교만이요, 외식이요, 아름답게 포장된
욕심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기도가 아닌 하나님의 기도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예수님의 기도로 돌아가자에서-
♡주의 사랑으로 오늘도 행복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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