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으로/예수님의기도로돌아가자

세례시 예수님의 기도<2>(눅 3:21-22)

에바다. 2009. 6. 26. 16:02


    세례시 예수님의 기도(2) 바로 이 관점에서 누가는 예수님의 광야 시험에서 얻은 예수님의 승리는 선악과를 따먹은 하나님의 첫 아들 아담의 실패를 하나님의 마지막 아들 메시아가 반전시키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새로 시작된 구원의 역사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절정에 도달하게 되었다 예수님과 아담의 대조는 바울 서신에서 등장한다 (롬 5장 ,고전 15:45~50) 누가는 예수님의 탄생을 온 백성에게 미치는 좋은 소식으로 소개했다(눅2:10) 아담의 타락이 인류에게 죄와 사망을 가져오는 최악의 소식이었다면. 이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메시아적인 구원 사역을 위해 등장하심은 인류에게 구원과 생명의 희소식이다 이렇듯 예수님의 기도와 응답의 사건은 예수님의 정체와 그 사역의 성격을 분명하게 결정짓는 중요한 사건이다 지금까지 평법하게 사셨던 예수님의 본격적으로 사역에 들어가시는 생애의 분수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마도 누가는 예수님의 기도가 없었더라며 하나님께서 보이신 초자연적인 응답 사건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다 누가가 예수님의 사역 초기에 예수님의 기도와 응답을 기록한 것은, 초대교회는 물론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 중요성을 몇 가지로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예수님의 최초 기도와 그 응답은 초대교회 탄생의 모델로서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초대교화가 승천하신 예수님이 보내실 성령을 기다리면서 열심히 기도한 것은 예수님의 세례 시 기도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예수님께서 기도없이 성령을 받지 아니하신 것같이 초대교회 역시 기도없이 성령을 받을 수 없었다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가운데 성령을 받으신 것같이 초대교회 역시 전심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을 받게 되었다. 이 둘은 누가의 관점에서 볼 때, 결코 우연한 사건이 아니다 예수님께 임한 성령이 그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기도하는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라면 초대교회의 성령 강림은 오순절에 120문도들이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 세례를 받음으로 이루어졌다 바로 두사건을 연결하는 것이(누가만 기록하고 있는)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시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이다(눅 11:13) 둘째,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로서 예수님의 사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예수님은 기도 응답으로 자신의 메시아적인 정체를 확인받았을 뿐만 아니라 성령 받으심으로 메시아로서 감당해야 할 사명임을 분명하게 확인하고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이것은 초대교회에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의 최초 기도와 기도 응답으로 예수님 자신에게 새로운 전기가 주어졌듯이, 초대교회도 기도의 응답으로 약속된 성령을 받아 예수님의 제자 120명을 중심으로 신약 교회가 탄생했고, 이 신약 교회는 인종, 언어,문화를 초월한 하나님의 다국적인 백성이 되었다 예수님께서 성령 세례를 받으신 이후 그의 모든 사역에 성령의 인도를 받았다고 하면 초대교회 역시 성령 세례를 받은 교회의 모든 사역과 활동은 성령의 주권적인 인도로 진행되었다 셋째, ㅇ뎨수님의 첫 기도와 응답 사건은 신자 개인에게도 중여한 의미를 가진다 신자 개개인이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신의 정체를 확인받는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얻을 수 있는 여러경로가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할 때 하나님의 자녀 된 정체를 확인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이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체험적으로, 개인적으로 확인받게 된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볼 때, 기도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는 신자에게 하나님의 자녀라고 확고부동한 확신이 있는 경우란 거의 없다, 반면 기도생활을 제대로 하는 신자치고 하나님의 자녀하는 확신을 갖지 못하는 자가 없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을 향하여 거리낌없이 나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하나님을 향하여 아버지라고 담대하게 부르는 자에게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이 없을 수 있겠는가? 신자속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그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시켜준다(롬8:16) 더 나아가 성령의 계속적인 역사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른다(롬8:15) 자신의 아버지를 향하여 아버지라고 말하기를 주저하는 않는 사람은 아버지와 바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일것이다 이것은 신자와 하나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버지를 멀리 떠나 아버지와 대화도 없고 시귐도 없는 상태라면 자신이 아들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없다, 복잡한 삶의 현장에서 아버지의 뜻은 온데간데없고 자신과 자신의 넘쳐 오르는 욕망을 따라 살면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가지고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도가 없는 곳에 하나님의 자녀 된 확신 그것도 하나님의 성령으로부터 오는 확신의 즐거움이 도무지 있을 수 없다 필자는 짧은 신앙생활에 비추어 볼 때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잃지 않고 살 수 있었단 것은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말없이 주시는 '너는 나의 사랑하는 자녀라'는 확신이었다 지속되는 이 확신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겠다는 결단이 나오는 것을 느꼈고 지금도 경험하고 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의 확신과 함께 우리에게는 사명이 온다 하나님께서 사랑하고 기뻐하는 아들은 하나님 아버지가 기뻐하는 아들이란 정체는 하나님 아버지가 지정해 주신 고난의 삶과 직결되었다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고난이 젼제된 고생할 필요가 없는,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가 지정해 주신 고난의 길로 가야 했던 것이 바로 예수님의 삶이었다 예수님께서 한평생 받은 유혹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니 그 특권을 활용하여 고난과 고생의 길을 피하라는 것이었다, 이 유혹이 사탄을 통하여, 그의 제자들을 통하여, 종교지도자들 통하여 왔고 마지막으로 십자가에 달렸을 때에도 계속됐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고난을 받아야 하고, 아버지가 지정하신 길을 그것이 어떤 길이라 할지라도 가야 한다는 각오를 분명하게 가지셨다 오늘날 우리는 정체성 상실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정체성 상실은 삶의 상실이요 자기 사명의 상실로 나타난다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니 살아야 할 삶이 어떤 것인 줄을 모르고, 어디로 가야 하는 지 모르고 어둠 속에서 방황함이 마땅하다 이것은 더 나아가 가치관의 상실,세계관의 상실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오늘날 이 시대의 현실이라고 하면 신자들은 바로 이 어두운 현실 속에서 숨을 쉬며 살아가고 있기에 심각한 위험에 처해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자녀된 신자들은 잘못된 경로 (요가, 마인드 컨트롤, 명상, 체면 요법 등)를 통해서 거짓된 방법으로 정체를 확인받는 길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 신자들은 진지한 기도로 하나님 아버니 앞으로 돌아와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정체를 확인받을 때 삶의 문제 사명의 문제, 가치의 문제는 해결받게 되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는 삶에서 기도하는 삶으로, 하나님과 만남을 경험하지 못하는 형식적이고 틀에 박힌 기도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역동적인 기도로 돌아와야 한다 우리는 제자들의 삶속에서 기도가 없을 때 정체 의식이 없었으며 이로 인하여 사명 의식이 없었던 것을 보고 있지 않는가! 기도가 진정으로 그들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때, 사도로서 예수님 앞에서 어떻게 그들의 정체와 사명을 십분 천명하며 살게 되는지 보고 있지 않는가!(사도행전) 나아가 수많은 신앙의 인물들에게서도 기도의 중요성을 증거받고 있지 않는가! 쉬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것 그러기에 힘에 벅찬 것, 이것이 기도이다. 그래서 기도는 전쟁이요 누구에게나 평생의 싸움이다 이렇게 보면 기도가 고생보따리요, 골칫거리일지 모른다 그러나 실상 진정한 기도를 하는 사람 치고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이요, 큰 기쁨과 영광임을 모르는 자가 없다 . -예수님의 기도로 돌아가자에서- ♡주의 사랑으로 오늘도 행복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