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기도 전쟁<2>(눅 22:39-46; 히 5:7참고)
④예수님은 전투적인 기도의 자세를 가졌다
예수님은
전쟁에서 승리를 위해 싸우는 용사와 같은 자세로 기도했다.
예수님에게는 기도 자세가 영적 전쟁이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눅 22:44)
우리는 이 말씀에서 "힘쓰고 애쓰셨다"는 표현에 주목한다.
이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게노메노스 엔 아고니아'
(geno-menos en agwnia) 이다. 여기서 '아고니아'
(agwnia)는 신약성경에서 한 번밖에 사용되지 않았다.
이와 유사한 단어 '아곤'(agwn) 은 6번 사용되었다
(빌1:30;골2:1;살전2:2;딤전6:12;딤후4:7;히12:1).
다행이도 이 단어는 동사형인 '아고니조마이'(agwnizomai)
는 8번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온 힘을 다해 싸우는 것을
의미한다. 운동 선수하면 온힘을 다해 경쟁하는 것을 가리키고
(고전9:25), 군인이라면 온 힘을 다해 전쟁하는 것을
말한다(요18:36).
이 단어를 사용하는 성경 구절을 잠시 살펴보자.
좁은 문으로 들어 가기를 힘쓰라(눅 13:24)
-온 힘을 다 기울여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다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요 18:36)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고전 9:25)
-운동 선수를 말하는 문맥에서
내 속에 능력으로 역사 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골 1:29)
-온 힘을 다하는 바울의 사역
저(에바브라 디도)가 항상 너희(골로새 교인들)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골 4:12)
이(경건의 연습)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딤전4:10)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7)
위의 구절들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쉽게 예수님의
기도가 전쟁을 치르는 것과 같이 온 힘을 다하는
기도임을 알 수 있다. 스타우퍼(Stauffer)라는 주경학자는
'아고니아'를 "임박한 결정이나 위함을 앞두고 온 힘을
최상으로 집중한는 것"이라고 보았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기도 전쟁은 인류의 운명을
바꾸어놓을 결정적인 전투를 앞에 두고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여 기도하는 영적인 전쟁이다.
이러한 이해는 예수님의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었다는 사실에서 증거된다.
전쟁에서 피흘림이 있듯이 에수님의 기도 중 땀이 피가
떨어지듯 했다는 것은 예수님의 기도가 영적인
전쟁임을 보여 준다고 하겠다.
우리는 누가가 예수님의 기도를 영적인 전쟁으로 생각한
사실에 비추어 우리의 기도를 검터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운동 선수의 진정한 가치는 전력을 다하여 경주하여 상을
받는 데 있다. 패자에게는 설자리가 없다.
패자는 환영받지 못한다. 경주에 실패하는 선수는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한다. 경기에 진 선수는 전혀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은 군인에게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전쟁에 나간 군인은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워 이겨야 한다.
전쟁에는 일등만 있지 이등은 있을 수 없다.
신자에게는 기도가 전쟁과 진배 없다. 신자에게 기도는
본업이다. 기도 전쟁을 하지 않는 신자는 신자 됨의
가치가 전혀 없다. 기도 전쟁없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구원의 뜻을 발견하고 그 뜻대로 살아갈 수
있다거나 사탄의 세력을 물리치고 분쇄할 수 있다는 생각은
망상과 무지가 빚은 영적 교만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예수님의 감람산 기도 전쟁을 생각하지 않고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의 승리를 생각할 수 없듯이,
주님의 뜻을 발견하고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되려는 성화의
노력과 영적 승리의 삶은 고독한 기도의 전쟁 없이는
불가능하다.
기도 전쟁이 없는 성도는 경주하지 않는 운동 선수와 같고,
싸움터에 나가 피 흘리며 싸우지 않고 몸을 사리며 얼굴을
땅에 박고 공중에 총부리를 겨누고 방아쇠를 마구 당기는
비겁자와 같다. 기도전쟁에서 승리하지 않고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승리의 개가를 부를 수 없는가! 예수님을 본받아
기도 전쟁에 날마다 참여하여 땀 흘려 승리하는 신자가
참으로 멋있는 성도이다.
⑤예수님은 피를 흘리며 기도 전쟁을 치렀다.
예수님은 땀이 핏방울처럼 떨어질 정도로 기도 전쟁을 치렀다.
누가복음 22장 44절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예수님의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과 같았다는 점이다.
여기서 핏방울이란 말은 '쓰롬보스 하이마토스'
(thrombos haimatos)로 약간의 핏방울을 말하는 정도가
아니고 많은 양의 응고된 핏덩어리를 말한다.
땀이 응고된 핏덩어리처럼 땅에 계속적으로 떨어지고
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엄청나게 많은
땀을 비오듯이 땅에 흘리면서 기도하셨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누가는 예수님의 기도가 얼마나 간절하고 절박하며 애절한가를
이런 원색적인 표현을 통해서 생생하게 나타내고 있다.
강청하는 기도의 비우를 가르치신 예수님은 자신이 몸소
간절하고 강청하는 기도를 드리셨다.
⑥예수님의 기도 결과는 누엇인가?
예수님은 그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을 받았는가?
두 말 할 것 없이 예수님은 기도하신 대로 응답을 받았다.
그 응답은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대로,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진 응답이다. 예수님에게 기도 응답은 하나님의
정하신 뜻의 성취이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응답이 아니다.
비록 예수님의 마음 한 구석에 십자가 고난의 잔을 마시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마지막 만찬 석상에서 제자들에게 십자가 고난의 잔을
마실 것을 당당하게 선언하신 예수님이지만 하나님 아버지
앞에 섰을 때 예수님의 심경은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당당하고 의기에 찬 결단을 내렸다가도 막상 사건이 눈앞에
닥쳐 왔을 때는 그만 어린아이 처럼 유약한 모습을 보이는
이치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예수님인들 우리가 느끼는
연약함을 체험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예수님에게 기도 응답은 두 가지로 나타났다.
하나는 전투적인 기도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하게 십자가
고난의 길을 확고부동한 결단으로 가실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그의 마음속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숨어 있던 의구심을
완전히 몰아내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기도 이후 예수님은
새벽에 체포된다. 체포에서 십자가 처형까지 조금도 요동함
없이 당당한 예수님의 모습은 기도 응답의 결과이다.
다른 하나는 이 기도를 통하여 십자가 고난의 잔을 마시는
것만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길임을 마지막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예수님은 이를 위해서 태어났고 이를 위해서
지금까지 살아왔다. 이제는 이 삶을 마감하는 단계에서
최후 결단의 기도를 하셨다. 이 기도를 통해서 지금까지 결어
온 메시아의 길이 옳았고 그 길의 마감은 오직 십자가 고난의
잔을 통해서만 이루어짐을 최종적으로 확인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기도 응답을 통해서, 역시 기도는 하나남의
뜻을 바꾸는 것이 아니고 미리 작정하신 뜻을 이루는 것임을
깨닫는다. 기도를 통해 변한 것은 예수님의 마음 가짐이다.
흔들리는 태도가 반석같이 확고부동한 태도로 바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예수님의 감람산 전쟁 기도를 되돌아보며,
우리의 기도를 진단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처럼 규칙적이고 계속적인 기도생활을 하고 있는가?
예수님이 천사의 도움을 받아 기도하듯이 성령의 전적인
인도와 도움으로 기도하는가?
예수님처럼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 중심에 기도를 하고 있는가?
운동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처럼 혹은 전쟁에 참여하는
군사와 같은 자세로 기도하고 있는가?
땀을 흘리며 그렇게도 간절하게 기도하셨던 예수님과
같이 과연 온몸을 땀으로 적시며 기도하고 있는가?
-예수님의 기도로 돌아가자에서-
♡주의 사랑으로 오늘도 행복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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