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은혜/교회법·특별기고

형평법과 하나님의 재판

에바다. 2011. 3. 14. 12:09

                 형평법과 하나님의 재판
                        재판은 하나님의 양심을 갖고 해야 
 

   한국법원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법원에 신뢰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교단법정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지연과 학연, 대형교회에 따라 춤을 추고 있다. 유권해석이라는 명분아래 초법적인 직권남용을 하고 있고, 자유심증주의라는 원칙아래 주관적 권위주의로 치우치고 있다. 
 

   기독교가 부패한 이유 중의 하나도 교단법정이 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기 있기 때문이다. 법은 공평하고 공정해야 하는데 정치나 권위에 따라 판단을 하다보니 굴곡되는 것이다. 영국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영국의 법은 보통법(common law) 인데 이를 보강하기 위해서 형평법(equity law)을 따로 만들었다.  
 

   형평법은 불문법(unwritten law)에서 파생한 것으로 정의와 공정에 기반하는 것이며 보통법에서 제공하는 구제보다 공평하고 충분한 법적 구제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영국의 보통법원에서 충분한 구제를 얻지 못한 시민들이 국왕에게 구제를 청하였다. 이러한 형평법원은 그 재량에 따라 보통법을 보완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
 

   교단재판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형평성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대형교회목사는 유리하게 소형교회는 목사는 불리하게 판결을 한다. 최근 노회재판국의 판결내용을 보면 가관이다. 법리만 굴곡된 것이 아니라 양심까지 굴곡된 판결을 하고 있다. 법의 원칙은 공평과 형평이다.
 

   공평과 형평이 결여된 법은 결국 윗사람들이 아랫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법이 공평성과 형평성을 상실하였을 때, 법은 악마적 근성을 갖게 된다. 힘없는 약자는 죄인이 되고, 강자는 무죄가 되는 것이다. 법의 형식적 이름으로 죄악이 범람하여 약자와 힘없는 자를 죽이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법이 예수를 죽였듯이 말이다.
 

   법을 잘못 적용하고 남용하여 형평성과 공평성을 상실한 사람들은 법의 악마성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법이 죄악을 가져오고 죄가 법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양심이 굴곡된 판결은 진노를 이루고 법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롬4:15)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법)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롬7:11)
 

   이처럼 법은 죄가 틈을 타서 사람을 죽이는 악마적 속성이 있기 때문에 재판관들은 법을 잘못 적용해서 악마에 이용당하지 않도록 해야한다. 재판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을 알고 외모에 치우치지 말고 공의와 정의로 재판해야 한다.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너희는 재판할 때에 외모를 보지 말고 귀천을 차별 없이 듣고 사람의 낯을 두려워하지 말 것이며 스스로 결단하기 어려운 일이 있거든 내게로 돌리라 내가 들으리라 하였고(신1:17)
 

   그가 주의 백성을 공의로 재판하며 주의 가난한 자를 정의로 재판하리니(시72:2)
 

   이와 같이 공의와 정의는 하나님의 재판방법 이다.  형평법 역시 이러한 성서적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이다.

 
   형평법의 원리 원칙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공평을 구하는 사람은 모두 공평한 행위를 해야한다.
   2) 형평법은 평등한 공평이 존재하는 곳에 존재해야 한다.     
   3) 형평법원에서 구제를 구하는 사람은 더러운 손으로 법원에 나가서는 안된다.(원고는 공 정하고 정직한 행동을 하는 자라야 한다.
   4) 형평법은 불법행위가 구제 없이 방치되는 것을 허용하여서는 안된다.
   5) 형평법은 형식보다 실질을 중시한다.
   6) 형평법은 자신의 권리에 대해 적절한 주의를 기울이는 자를 구제하며, 권리 위에 잠자  는 자를 구제하지 않는다. 


   이처럼 재판관들은 재판은 하나님께 속했다는 의식과 양심을 갖고 공평과 형평에 입각하여 재판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양심을 갖고 재판을 하지 않는다면 악마적 속성에 이용당하게 되어 굴곡된 판결을 하게 되는 것이다. (2011.3.10.에클레시안 / 황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