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가르치신 기도(2)[하]
2.겸손의 기도가 바른 기도다(눅 18:9-14)
이 비유는 앞에서 본 비유와는 달리 기도의 자세에 관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사실 이 비유는 기도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핵심적인 가
르침은 기도의 차원을 넘어서 겸손에 관한 중요한 진리를 가르치고
있다.우리의 관심은 기도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기도와 관련해서만
그 중요성을 언급하고자 한다. 먼저 비우의 내용을 보자.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
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불의,간음을 자는 자들과 같이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
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자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눅 18:9-14)
위의 비유에서 극단적인 대조를 본다.바리새인과 세리이다. 이들은
정반대의 사람이다. 비유에 등장하는 바리새인은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으로가장 경건하고 가장 거룩하고 가장 하나님의 울법을
잘 지키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반면 세리는 가장 불경건
하고 가장 더럽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며 사는 자로서 동포의
수탈자요 도적이요 배신자이며 로마 정부의 동조자이다.
성전에 올라간 바리새인은 자신은 거룩하고 깨끗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따로 떨어져 섰을 뿐만 아니라(11절), 가장
부정하다고 생각되는 세리로부터 부정을 타지 않기 위해서 의식적
으로 따로 떨어져서 기도했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둘로 나누어진다. 찻 부분은 자기는 다른 사람
과는 다르다고 하는 자기 자랑, 자기 과시, 자기 의를 드러내는 기도
이고(11절), 두 번째 부분은 자기가 행하는 것을 자랑하는 기도였다
(12절), 그의 기도 속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고 그의 은혜에
감사하며 죄의 용서를 구하는 내용이 전혀 없다. 이런 기도는
유대인들의일반적인 기도에 어긋나는 기도이다. 자기 자신으로 가득
찬 기도이다.지상에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 있다면 그가 자기 자신이라고 확신하는 듯한 기도였다.
반면 세리의 자세와 기도는 정반대로서 바리새인의 기도에 없는
것만 있다. 자신이 거룩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다른 예배자들과 함께
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세리와 같은 죄인은 저만치 뚝 떨어져
기도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 세리는 다른 예배자들과 함께 있을 수가
없었다(13절). 자신은 너무 더럽고 부정한 죄인이기 때문에 일반
예배자들은 물론 하나님 앞에 감히 설 수가 없다고 믿었다. 그래서
멀리 떨어져 서서 기도했다. 그의 의식은 그가 가슴을 치며 기도하는
모습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남자가 가슴을 치는 경우는 극히
드문일이다. 그는 아마도 모든 죄악 된 삶이 마음에서 나왔다고
생각했기에 가슴을 치며 회개한 것 같다.
또한 기도 내용도 바리새인의 그것과 정반대이다. 자기 우월감과
자기 자랑으로 가득 찬 기도가 바리새인의 기도였다면, 세리의
기도는 한마디로 이 못난 죄인 불쌍히 여겨달라는 것이였다(13절)
여기에 사용된 동사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동사가 아니고, 아주
독특한 단어이다.'힐라스코마이'(hilaskomai)는 자기의 죄를 덮어
자기의 죄를 용서하고 그를 하나님께서 받아달라는 것이다.
세리는 이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속죄 희생의 은총이 자기에세 임
하게 해 달라는 것을 아주 분명히 했다. 원래 이 단어는 제사장이 백성
들의 죄를 속하기 위해 희생 짐승을 잡으며 의식을 행하는 모습을
그린 단어이다. 죄인을 대신해서 희생 짐승이 죽었으니 하나님께
불쌍히 보가 속죄의 은택을 입혀달라는 기도의 언어였던 것이다.
이렇게 정반대의 기도를 드린 결과는 어떠했는가? 자기가 죄인임을
알고 이를 마음 중심으로부터 고백한 세리는 하나님 앞에 속죄 희생
의식을 통하여 속죄의 은총을 받아 의롭다 함을 받고 집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자신은 의롭기 때문에 죄 용서의 은총도 속죄 희생의 은택도
필요하지 않다고 인식한 자칭 의인은 죄인으로 선언받고
내려갔다(14절). 예수님은 이 대조적인 결과를 상기시키며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셨다(14절).
여기서 자기를 높인다는 것은 바리새인의 경우처럼 자기를 위롭게
여겨 하나님의 자비에서만 나오는 죄 용서를 외면하는 태도이고
자기를 낮춘다 함은 세리와 같이 자기가 참 죄인인 줄 알고 죄를 진
정으로 고백하며 하나님의 용서를 전적으로 구하는 자세이다. 낮아
진다는 것은 하나님에 의해 정죄를 받는 것이고 높아진다는 것은
하나님에 의해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이 비유가 기도에 대하여 가르치는 몇 가지 사실을 주목해 보자.
첫째, 참된 기도는 자기의 잘남과 성취를 자랑하는 기도가 아니다.
바리새인은 자기의 우월성과 업적을 하나님 앞에 자랑했다.
들째, 참된 기도는 사람이 들으라고 하는 기도가 아니다. 바리새인
은 하나님이 들으시라고 기도하기는 커녕 둘러선 사람들 들으라고
기도했다. 그가 한 기도의 결론은 다른 사람들은 다 못났는데 자기
만 잘났다는 것이었다.
셋째, 하나님의 은혜의 절대적 필요성, 죄의 진정한 고백이 없는
기도는 참된 기도가 아니다. 바리새인의 기도에는 이 요소가 전혀
없으나 세리의 기도에는 이것이 핵심이다.
넷째, 자신의 삶을 오직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만 비추어 보고 드
리는 기도가 참된 기도이다. 세리는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다른
어떤 사람도 의식하지 않고 자기를 오직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만
비추어 죄 용서의 은총을 구했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나보다 못하게
살거나 못하게 믿는 자를 으식한다. 그래서 진정한 회개의 필요성
을 느끼지 못하고 따라서 회개 없는 기도를 드리고 자비와 긍휼을
구하는 기도가 기도 내용에서 점덤 빠지게 된다. 우리의 비교 대상
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예수님과 우리보다 앞서 예수님을 본받은
신앙의 선배들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자세가 있는
기도는 겸손한 기도이다.
다섯째, 응답받는 참된 기도는 결코 자기를 높이고 남을 무시하지
않는다.바리새인의 기도는 자기를 높이고 남을 완전히 무시하는
기도였으나 응답 받는 기도를 하는 자는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하심
때문에 살 수 있고 그 앞에 성 수 있음을 늘 의식하기 때문에
남을 무시하지 않는다.
여섯째, 참된 기도는 자기가 행한 것을 자랑하지 않고 이를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로 돌리고 진정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돌리며.
하나님의 은혜를 배격하여 행하지 못한 일들을 회개하는 마음으로
내어놓고 그의 자비와 사랑, 성령의 새롭게 하심을 구하여 더 많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일에
더 비중을 둔다.
일곱째, 하나님이 우리 기도 속에서 "하나님 나는 오늘날도 주님
의 용서와 자비가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죄 용서
함이 없이는 오늘날 주님 앞에서 설 수 없습니다. 오늘날 주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이 없으면 주님을 본받고 기쁘게 하는 일을 한
가지도 행할 수 없습니다." 하고 고백하는 겸손을 찾으신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교만한 자의 기도를
물리칠 뿐만 아니라 가증하게 생각하신다.
-예수님의 기도로 돌아가자에서-
♡주의 사랑으로 오늘도 행복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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