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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가르치신 기도(3)-기도와 재림<하>

에바다. 2010. 9. 30. 20:00


    예수님이 가르치신 기도(3) 기도와 재림<하> 주님께서는 재림과 관련하여 두 가지 사실 때문에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첫째,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장차 올 이 모든 일" 은 31절에 언급된 "이런 일"(티우타:tauta)과 32절에 언급된 "모든 일"(판타:panta)로 합친 표현이다. 그래서 장차 올 "이 모든 일"(타우타 판타:tauta panta)로 언급되었다. 이 모든 일들은 더 나가서 28절에 언급된 "이런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에서 "이런 일들"(투톤: toutwn)을 가리킨다. 28절에 언급된 "이런 일들"은 7~18절에 언급된 것들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이 모든 것들은 믿는 자들이 앞으로 겪게 될 시험, 환난, 그리고 박해를 말한다. 바로 주님의 재림이 있기 전에 있을 것들로 이러한 시험, 환난, 박해가 닥쳐 신자들은 믿는다는 이유로 많은 어려움을 당하게 될 것이다. 또한 형제, 자매, 부모에게 배반 을 당하고(16절), 예수님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게 될 것이다(17절). 이러한 박해 상황에서 하나님은 참 신자들을 보호 해 주실 것이데, 참 신자들은 인내로 이 모든 환난, 박해와 시련을 이길 것이다(18,19절) 그날에 박해가 미움이 너무 심하기 때문에 그제서야 허둥지둥 기도 해서는 환난과 박해를 이기기에 역부족일 것이다.이런 대환난과 박해의 날이 닥치기 전에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어야 인내하는 신앙으로 배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하셨다. 항상 기도로 준비 되어야 장차 오는 모든 환난과 박해를 능히 피할 수 있는, 인내하는, 끝까지 참고 견디는 신앙인으로 판명될 것이다. 그래서 주님이 항상 기도해야 한다고 하셨다. 36절에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한다"는 말은 이러한 환난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끝까지 지킴을 말한다. 마지막 환난이나 박해로 인해 배도 하는 해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으면 환난과 박해를 능히 피할 수 있다. 본문에 "능히 피한다"는 말은 '카티스쿠오'(katischuw)로 어떤 것을 극복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을 의미한다. 마지막 대환난을 겨우 턱걸이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능히, 여유 있게, 쉽게 이기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항상 깨어 기도하면 마지막 환난을 이길 믿음의 실력과 힘이 저축되는 것이다. 더 많이 기도하면 할수록 환난을 이 길 힘과 능력은 점점 더 많이 비축될 것이며 시험 준비를 적게 한 사람일수록 시험은 아주 힘이 들고 어려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시 험일이 다가오는 것이 두렵고 떨릴 것이다. 반면 철저하게 준비를 한 학생은 시험을 능히 잘 감당할 것이다. 오히려 시험이 빨리 오기 를 기다리고 사모할 것이다. 이와 같이 신자들은 늘 기도를 저축해야 한다. 항상 기도함으로 영적인 힘과 능력을 비축할 때. 주님이 오시기 전에 닥칠 환난을 능 히 피하고 이길 수 있다. 기도로 철저히 준비 되지 않은 사람은 시험 에 다 넘어지고 말 것이기 때문에 주님은 기도를 강조했다. 교회사적으로 볼 때 평상시에 경건한 삶을 살면서 기도에 힘쓴 성도 들이 큰 환난이나 대박해를 잘 견디고 죽음을 무릅쓰고 신앙을 지키거나 자랑스럽게 순교를 한 예가 많이 있다. 일제 시대 때 신사 참배라는 환난과 박해는 당시 한국 교회 성도들에게 엄청난 시험이 었다. 이때 누가 신앙을 지켰는가?평상시에 경건하게 살면서 기도 생활에 힘썼던 사람들이다. 우연히 순교다운 순교를 한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여기서 우리는 누가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닥칠 시험과 박해와 관련해 항상 기도의 삶을 강조하신 것을 왜 기록하고 있는지 잠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주님께서는 일찍이 주기도의 내용 속에 '시험 에 들지 않게 하옵소서' 하는 항목을 두셨다(마6:13;눅11:4). 왜 주님이 우리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고 하셨을까? 우리 주 님 자신이 공사역 기간에 모든 시험을 기도로 극복하셨기 때문이 다. 비록 누가가 강조하고 있지는 않지만 예수님의 광야 시험은 그 가 사탄의 모든 시험을 기도로 이긴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눅 4:13) 예수님의 전 사역 기간에 걸쳐 그의 대항한 사탄의 반격과 시험은 세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사탄의 첫번째 공격은 시험이 예수님 의 공사역 시작 전 광야 시험에서 있었다. 두번째 시험은 간접적인 것으로 사람들을 통한 것이었다.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하는 도구로 사용한 사람들은 유대 종교지도자, 유대인, 심지어는 제자들이었다. 이런 것들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상태에서 진행되는 간접 적이고 은밀한 시험이었다. 마지막 세번째 시험은 첫번째 시험과 두번째 시험을 합친 것보다 더 큰 사탄의 최종적인 시험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다. 누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사건의 때를 어둠의 권세가 전면적으로 역사하시는 때로 간주하셨음을 기록하고 있다(눅22:53). 사탄이 직접 유다의 마음속에 들어가고 유대 지도자들을 총동원한 것은 생 명의 주를 잡아죽이고자 한 것이지 예수님이 십자가 구원을 완성하 시도록 한 것은 아니었다. 사탄의 총 공격과 시험을 이용하여 구원 의 대 사건을 이루신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 능력 그리고 지 혜이지 사탄의 의도나 목적이 아니었다. 사탄은 이중 작전으로 예수님을 시험하고 유혹했다. 한편으로는 예수님을 체포하여 사형 언도를 받아 십자가에 처형 당하게 하고, 다른 햔편으로는 십자가 위에 올려놓은 다음 거기서 당장 내려오라 고 유혹하고 시험했다.이렇듯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관련된 사탄 의 '대대적인 시험'은 최종적이자 마지막 시험이었다. 예수님은 마지막 시험 후에는 다시 시험받지 아니하셨다. 사탄의 엄청난 시험과 박해,유혹을 예수님은 어떻게 이겼는가? 말할 것도 없이 그의 전 생애 동안 계속된 항시 기도요, 밤낮의 기 도 덕분이었다. 감람산 기도는 이런 기도의 본보기였다. 항시,밤낮 으로 기도하신 우리 주님은 십자가 사건과 관련하여 사탄의 교묘한 시험을 아주 당당하고 힘있게 감당하셨을 뿐 아니라, 이것을 택자 의 구원을 최종적으로 성취하는 대 사건으로 사용하셨다. 예수님이 자신의 항시 기도의 삶을 사탄의 마지막 시럼인 십자가 사건과 연결하시고, 신자의 기도생활을 그의 재림 전에 닥칠 사탄 의 마지막 시험, 박해와 연결하신 것은 놀랍다. 누가복음은이 점을 아주 잘 부각시키고 있다.예수님은 그의 십자가 사건을 앞두고 감 람산에서 집중적인 기도를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기도할 것을 부탁 하셨다. 마태와 마가는 에수님께서 감람산에서 세번 같은 기도를 하셨다고 기록한다. 그런데 이 두 저자에 따르면 예수님은 처음에 기도하러 기실때 "여기 머물러 꺠어 있으라"고 제자들에게 당부하셨다 (마26:40,46;막14:34). 이 첫번째 기도를 한 후에 제자들에게 와서 그들이 잠자는 것을 보시고 "일어나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 고 명령하신 것으로 마태와 마가는 기록한다.반면 누가의 관점은 이와 다르다.누가는 예수님께서 감람산에서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는 말씀을 두 번 하신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22:40,46).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 사건과 관련하여 일어나는 사탄의 최종적인 시험을 이기는 방법이 오직 기도임을 강조한 것임 을 의미한다. 반면 제자들은 십자가 사건과 관련된 사탄의 시험 앞에 어떻게 됐 는가?그들이 십자가 구속 사건의 특수성 때문에 불가불 예수님을 버리고 떠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하지만 그들이 예수 님을 버리고 난 후에 취한 행동을 보면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 탄의 시험에 빠진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만일 제자들이 그때 기도 로 무장했다면 예수님을 버리고 떠나간 다음에라도 비겁한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이도 그때는 세상의 종말을 가져오는 재림의 날이 아니었기 때문에 제자들에게는 사탄의 시험에 빠진 후에 다시 믿음으로 회복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그러나 이러한 기회는 주님의 재림을 기 다리는 오늘날 우리에게 불가능하다. 예수님께서 지림하심으로 말 미암아 모든 것이 끝날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재림 때에는 기도 로 준비하지 않고 사탄의 마지막 시험을 이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재림하시는 인자 예수님 앞에 설 수도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심각하게 여기에서 말씀하고 계시다.예수님께서 항상 기도의 생활 과 십자가와 관련된 사탄의 최종 시험을 연결시켰듯이, 우리의기 도와 주의 재림 전에 있을 사탄의 최종적인 박해를 연결시키는데 그것이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누가복음 21장 34-36절의 가르침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주님의 재림과 관련해 항상 기도해야 한다는 말 씀에서 다음 사실을 배웠다.주님의 재림 이전에 있을 환난, 시험 그리고 박해를 능히 이길 힘을 기르고 저축하기 위해선 항상 기도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36절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또 한 가지 사실 은 인자 예수님 앞에 서기 위해서 항상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인자 앞에 서는 것은 환난과 박해를 능히 피하고 이긴 자로 서는 것을 말한다. 환난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배반하거나 신앙을 저버리지 않고 승리한 성도로 서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인자 앞에 설 때 재림하는 주님으로부터 구원 완성의 복을 최종적으로 받게 되며 이때 주님께서는 신앙을 인정해 주신다. 그래서 예수님은 누가복은 18장 8절에 "그러나 인자 올 때에 세상 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항상 기도해야 한다고 주님께서 가르치신 것이다.그렇다면 우리는 언제까지 항상 기도해야 하는가?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날까지 항상 기도해야 한다. 그날까지 항상 밤낮으로 기도하는 자가 주님이 인정 하는 진정한 믿음을 가진 자이다.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삶은 항상 꺠어 기도하는 삶임은 누가만의 가르침이 아니라 복음서에서 모두 기록된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꺠어 있는 기도생활 없이 주님의 재림을 학수고대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재림의 축복을 받을 수 없다(마24:42,44;25:13; 막13:33,35,37) 마태복음 25장의 열 처녀 비유는 이점을 잘 가르쳐준다. 그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니 깨어 기도하라는 비유의 결론에 비추어 볼 때 어리적은 다섯 처녀는 마치 기름이 떨어진 사람처럼 항상 깨어 기 도하는 삶을 살지 않는 자들임을 알 수 있다. 주님의 재림 날에 우리는 부모, 아내, 남편,주의 종,혹 그누가 나를 위해 한 기도를 기대서 설 수 없다. 오직 각자 자기 자신의 지속적인 인내의 기도, 항시의 기도로만 설 수 있다. 계속적인 기도의 삶이 주님의 재림 날에 얼마나 절대적으로 중요 한지 그때 가서 후회하지 말고 속히 깨닫고 실천할 수 있는 신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재림하실 예수님은 이렇게 깨어 기도하는 자의 믿음을 그때 인정해 줄 것이다. 그래서 그날이 오기 전에 우리에게 누가의 기록을 통해서 지금도 말씀하고 계신다. -예수님의 기도로 돌아가자에서- ♡주의 사랑으로 오늘도 행복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