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의 기도생활(1)<상>
우리는 지금까지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의 기도생활과 기도에
관한 그의 교훈을 살펴보았다.
예수님은 기도생활이 모범을 계속 보이면서 제자들에게
기도할 것을 가르치고 권면하셨다.
우리가 본 바 대로 에수님은 누가복음 11장에서 바른 기도의
내용, 방법, 그리고 응답에 대하여 가르치셨다. 18장에서는
낙망치 말고 항상 기도해야 할 것과 기도의 바른 자세인 겸손에
대해 말씀했다. 이 기도는 쉼이 없는 밤과 낮의 기도였다.
예수님은 21장에서 또한 그날과 그 시를 모르는 주님의 날을
준비하는 가장 합당한 방법이 항상 꺠어 기도하는 삶임을
가르치셨다. 항상 꺠어 있는 기도생활을 통해서만 주님의 재림
전에 있을 마지막 환난을 믿음으로 잘 이기고, 재림하시는 인자
앞에 신앙을 인정받는 사람으로 서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기도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과 그의 기도생활
을 계속해서 보고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도하는 일에 실패했다.
그래서 누가복음에는 제자들이 기도하는 모습이 한 곳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사도행전에서는 상황이 180도로 바뀌었다.
전혀 주님을 닮지 않았던 제자들이 주님의 승천 이후 그분이
보여주신 기도의 본을 닮아가는 모습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사도행전 전체에 묘사된 사도들과 초대교회의 모습은 마침내
예수님을 닮아 철저하게 기도하고 말씀을 전파하는 모습이다.
신약성경에서 기도에 관한 언급이 제일 많은 책이 사도행전이다.
사도행전에서 기도가 33번 언급된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체 28장 중 기도가 언급되지 않는 장은 15,17-19, 23-26
장 뿐이다.이 장들에서 기도의 언급이 없는 것은 이를 언급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사도들이 예수님처럼 철저하게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었기 때문에 그들이 있는 곳에 기도가 있었고
또한 예수님의 사역에 늘 따르던 기적들이 줄을 이어 일어났다.
주님이 오랫동안 원하셨던 기도하는 제자들이 되어가는 모습을
사도행전에서 보기 때문에 초대교회의 기도생활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본 장과 다음 장에서 사도행전에 나타난 사도들과 초대교회
기도를 검토하고자 한다. 특히 본 장에서는 사도들과 120문도의
기도,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의 네가지 특성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1.120문도의 기도(행1:12-14)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샬렘에서 가까와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들어가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베드로,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빛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 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행 1:12-14)
이제 주님의 제자들은 감람산에서 승천하시는 주님을 전송하고
예루살렘에 있는 마가의 다락방으로 모인다(13절) 예수님의
11제자들을 비롯하여 예수님의 전도 여행을 따라 다니며
수종을 들었던 여자들과 그의 어머니 형제들이 함께 모였다.
이들과 다른 사람들을 함쳐 총 120여명 정도가 이 다락방에
모이게 되었다(15절).그들이 모인 다락방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다락방이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다락방은
아주 작아서 몇 사람밖에 들어가지 못한다. 천장이 너무 낮아서
그 안에 설 수가 없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가옥 구조상
가장 좋은 방은 위쪽에 있는 다락방이다. 이 다락방은 오늘날
집이나 아파트의 큰 거실에 해당한다.
다락방은 맨 위층에 있기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기웃거릴 수 없을 뿐 아니라 , 거리의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지 않아 가장 좋은 방이었다. 그래서 이 방은 주로 회집 장소나
공부방, 기도방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때로는 다락방을 사람에게 대여해
주기도 했다고 한다.
본문을 통해선 그 집이 누구의 집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13절에 "저희 유하는 다락" 이라고 한 것을 보아 제자들에게
아주 잘 알려진 장소인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다락방이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한 장소요(막 14:12-16),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된 후에 제자들이 숨어 있던 장소, 또한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났던 장소라고 한다(눅24:33-43;요20:19),
아마도 본문에 언급된 "여자들" 중 한 사람의 집이
아닌가 추측한다. 사도행전 12장 12절에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이 회집 장소와 기도 장소로 쓰인 점을 볼 때
마리아의 집일 가능성이 높다. 누구의 집이든 간에 중요한 것은
120명의 제자들이 모여서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썼다는 사실이다.
이 기도의 모임의 주도자는 베드로였다.
13-14절에 제자들 이름 중 베드로가 제일 먼저 언급되었고
베드로가 일어나 설교하는 것을 보아서(15-22)
그가 이 기도회를 인도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베드로의 인도에 따라 120명의 제자들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썼다.
이러한 합심기도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이 임할 때까지
기다리라는 주님의 당부에 대한 순종이었다.(눅 24:49;행1:4),
그들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린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기도하면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의 선물을 기다렸으며 이 기도는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합심기도였다. 이 기도가 초대교회의 근본적인
특징을 형성한다.
우리는
특별히 120문도들이 "기도에 전혀 힘쎴다" 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헬라어로 이 동사는 '프로스칼데레오(proskartelew)'이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 10번 사용되었다.
그 중 4번만 제외하고(막3:9;행8:13;10:7;롬13:6) 모두 다 기도와
관련하여 사용되었다.(행1:14;2:42,46;6:4 롬 12:12;골 4:2)
이 단어가 사람을 목적으로 취할 때는 "사람에게 충성을 다 하는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신하가 상관을 성실하게 섬기는 행위(행10:7)나
제자가 스승을 성실하게 따르는 행위(행8:13)를 가르킨다.
그룬드만(Grundmann)에 따르면 이것이 물건 혹은 사물을 목적어로
취할 때 어떤 일에 집요하게 전념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다시 말해 인내를 잃지 않고 끝까지 견디어 어떤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일을 굳게 잡아 놓치지 않고 이에 전념하는 것을 말한다.
이 단어가 '기도'라는 단어를 목적어로 취할 때 이러한 의미를
전적으로 반영한다.
다시 말해서 굳게 참고 인내하며, 끈질기게, 간절하게,계속적으로,
기도하는 것을 말한다.
곧 기도의 인내성, 계속성,지속성, 간절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끈질기게 간절한 기도를 한 사람은 한두 사람이 아니었다.
11명의 제자들만도 아니었다. 120명의 제자들이 모두 함께 모여서
한마음으로 계속적으로 기도해 왔다.(14절). 14절에 사용된 동사의
미완료 시제와 현제 분사가 보여주듯이 이 합심기도가 계속,
연속적으로 진행돼 왔음을 암시받는다. 아마도 우리는 사도들과
120문도들이 생명을 내놓고 10여 일간 전폭적으로 기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합심기도는 유대교에는
전례가 없었던 획기적이고 역사적인 기도였다.
그룬트만의 지적에 따르면 대체적으로 우대인들은 습관적으로
정한 시간에만 기도하곤 했다. 아침, 점심, 저녁에 간단하게
기도문에 따라 기도하는 정도였다. 이때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기도는 주기도문과 비슷한 카디쉬(Kaddish) 기도이다.
"주님이 주의 뜻을 따라 창조하신 세상에서 주의 위대한 이름이
높임 받고 거룩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주께서 자의 생전,
제가 사는 동안, 이스라엘의 온 집이 살아있는 동안과 그리고
가까운 장례에 주님의 나라를 세우시옵소서"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다른 기도문은 18항목의 축복으로 구성되었다.
18개 항목 출복 기도는 회개,용서,선택에 대한 감사,구원의 소망이
주요 내용으로 들어있다.주어진 기도 내용에 따라 습관적으로
외워서 하는 기도이기 때문에
그들의 기도에는 간절함, 인내, 강청함이 있을 수 없었다.
놀라운 사실은
120명의 합심기도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오랫동안 가르쳤던
기도의 실천이라는 점이다. 주님께서 인내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간절하게 강청하는 기도를 하라고 가르치셨다.
주님이 누가복음에서 가르치고 명령한 기도는 간절한 기도,
인내하는 기도, 강청하는 기도, 항상 기도인 것을 우리는
이미 배웠다. 이러한 가르침을 반영하는 어구가 14절에 사용된
"기도에 전혀 힘쎴다" 는 표현이다. 결국 제자들과 초대교회가
주님이 명령하신 기도를 본받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누가는 이 단어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친
기도를 집약했다고 볼 수 있다.
누가복음 11장이 가르치는 기도와 18장에 언급된 끈질긴
밤낮 항시의 기도를 "기도에 전념했다" 는 표현이 그대로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해도 전혀 무리가 되지 않는다.
이런 디고는 초대교회의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나중에 예루살렘
교회의 행활 특성이 되었다(행2:41). 다시 말해서
이런 기도가 초대교회의 기도의 표준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의 독자들에게 기도를 권면할 때 마다
이 단어를 사용했다. 이것은 예루샬렘 교회의 최초 합심기도가 온
초대교회의 기도의 본보기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 내용을 잠시 보면,
소망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테 프로슈케 프로스칼데룬테스:
te proseuxe proseuxe proskarterountes)
(롬 12:12)
기도를 항상 힘쓰고
(테 프로슈케 프로스칼데룬테스:
te proseuxe proseuxe proskarterountes)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4:2)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엔 파세 프로스칼데레세이 : en pase proskarteresei)
여러 성도들을 위하여 구하고(엡5:18)
우리는 본문에서
사도들의 기도가 예수님의 기도를 반영하고 있음을 보았다.
이 외에도 우리는 세 가지 면에서 예루살렘 교회의 기도가
철저하게 예수님의 기도를 본받은 것을 알 수 있다.
첫째,
가룟 유다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두 후보자를 천거하고
기도하는 120문도의 모습을 예수님이 12제자들을 택할 때
하셨던 기도를 반영하고 있다(눅 6:12-13).
사도행전 1장 24-25절에 "저희가 기도하여 가로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요셉과 맛디아) 중에
누가 주의 택하신 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를 버리옵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는
기도가 나온다. 그들은 이렇게 기도하고 제비를 뽑아
맛디아를 사도로 선정하게 되었다(행1:26)
둘째,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 성령이 그 위에 임했던 것같이(눅3:21,22),
120명의제자들이 전혀 기도에 힘쓸 때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는
역사가 있었다(행 2:1 이하). 뿐만 아니라 누가복음 11장에서
강청하는 기도를 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가 같이 사도행전 2장에서 간절히 기도하는 사도들과
120문도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시는것을 그대로 본다.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예수님께 성령의 선물을 주셨듯이
기도하는 교회에게 성령이라는 선물을 주셨다.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 성령이 임한 사건에도 이 점은 그대로 반영된다(행8:17).
셋째,
에수님께서 기도하는 가운데 그가 성취해야 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분명해 진 것같이 (산상 철야 기도와 감람산 기도에서), 제자들도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하게 깨달았고
또한 성취해야 할 하나님의 뜻을 명확하게 분별하고
유다의 빈자리를 채워야 한다고 성경을 통해 베드로가
주장하게 되었다(행 1:20,21)
우리는 누가복음과 다른 복음서에도 모자란 사도를 보충하라는
하나님의 별도 지시가 없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어떻게 제자들이 모자란 사도직을 보충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는가? 그들은 간절한 합심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되었다. 그들의 힘을 합쳐서
기도하는 가운데 그들이 성취해야 항 하나님의 뜻이 그들 마음속에,
특별히 베드로의 마음속에 깨달아진 것이다.
그것도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서 깨달은 것이 아니라
성경의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깨달게 되었다.
20절 말씀에 기록된 대로 베드로는
시편 69편 25절과 109편 8잘에 근거하여 가룟 유다의
비참한 죽음을 이해하게 되었고, 이 깨달음에 따라 그의 죽음으로
인해 모자란 사도직이 보충돼야 함을 알게 되었다.
베드로가 이 깨달음을 모인 사도들과 나머지 무리들에게
설교를 했을 때 그들은 아멘으로 받아들이고 이에 따라
두 명을 천거하였으며, 이둘을 놓고 기도한 다음에 제비를 뽐았다.
아직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구약적인 방법으로 제비를 뽑을 수밖에 없었다.
제비 뽑는 방법은 성령 강림 이후 더 이상 신약 교회에 사용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에 대한 분별력을
주시기때문이다(행15:28)
우리는 초대교회의 합심기도의 기록을 통해 철저한 기도가
교회의 참된 모습에 얼마나 중요한지 보게 되었다.
이러한 기록을 보면서, 오늘날 한국 교회가 바른 기도에
전념해야 할 것을 깨닫는다.
예수님을 본받아 기도에 전혀 힘쓰는 사도들과 예루살렘 교회가
된것같이 우리 또한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교회에서 중직을 맡은 일꾼들은 앞장서서
기도의 본을 보여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될 때 모든 성도들이 그들을
본받아 기도하게 된다. 교회의 합심기도는 각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분별하고 성취하기 위한 것이지,
인간의 사사로운 욕심이나 이상을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의 온전한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여 이루시고자 하는 일이 분명하게 되고 또한 이 뜻이
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의 손발을 통해서 실행되는 역사가
나타나야 할 것이다.
*2.예루살렘 교회의 네가지 특성 (다음장에서)*
-예수님의 기도로 돌아가자에서-
♡주의 사랑으로 오늘도 행복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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