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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와 선교 <상>
우리는 이 장에서 하나님께서 이떻게 기도를 통하여 교회가 선교 사역을 감당하게 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는 이를 위해서 개종한 사울의 기도, 베드로의 기도, 고넬료의 기도, 그리고 안디옥 교회의 기도생활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1.사울의 기도(행9:11)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죽이는 데 가담한 청년 사울은 살기가 등등하여 여세를 몰아 신자들에게 대대적인 박해를 감행했다. 그는 다메섹에 있는 신자들을 잡아 예루살렘으로 끌고 가려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다. 거는 너무나 밝은 광채로 인하여 볼 수 없게 되어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다메섹에 도달하게 되었고 다메섹 길가에 있던 유다라는 사람의 집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행9:11). 사울이 기도 중이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주님의 제자 아나니아 에게 하신 말씀이다. 누가는 왜 새롭게 변화된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는지 공식적으로 세례를 받고 신자가된 상태는 아니었다. 누가의 의도는 예루살렘 교회의 새로운 시작을 기도라고 공통 분모로 연결하는 데 있었다. 열심히 기도하고 있던 예루살렘 교회에 성령이 임하고 그 결과 120문도들 은 성령이 충만하게 되었다(행2:4). 그때부터 사도들과 120문도는 복음 증거의 사명을 성령의 능력으로 시작하였다. 이와 같은 일이 사울에게 일어났다. 사도들과 믿는 자들만이 부활 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것같이 바울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메섹 도상에서 영광 중에 보았다. 그리고 그는 다메섹에 와서 기도하고 있다가 아나니아에게 안수를 받고 성령을 충만하게 받게 되었다 (행9:17). 예루살렘 교회가 한 경험을 사울이 동일하게 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더 나가서 사울의 사명은 예루살렘 교회에 주어진 사명의 연장이 었다. 예루살렘 교회에게주어진 사명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증인 으로 복음을 예루살렘, 유다,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증거하는 것이 었다(행1:8). 사울은 동일하게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 에게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부름받았다(행9:15). 사울은 성령을 받은 예루살렘 교회가 담대하게 그리스도를 증거한 것과 같이 성령 을 충만히 받자 마자 즉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담대하게 증거하게 되었다(행9:20-27). 세례를 받고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았던 예수님은 그때부터 공사역을 시작하셨고, 예루살렘 교회 역시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을 받아 교회의 사명을 깨닫고 복음 증거의 사명을 시작했다. 이와 같이 동일하게 바울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기도, 성령의 충만, 사명의 깨달음, 증인의 사명 감당, 이 네가지가 예수님과 사도들과 사울에게 공통 분모가 되었다. 이제 새로운 삶을 기도로 시작한 사울은 한평생 기도하는 사람으로 살았다. 사도행전은 바울의 삶과 사역이 기도가 없이는 진행되지 않았던 것을 잘 보여준다. 누가는 이 점에서 사울 역시 예수님을 본받은 사도들과 같이 예수님의 기도를 본받은 사람이 되었음을 보여 준다.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 교회를 섬길 때에 그는 교인들과 함께 금식기도를 했다(행13:2). 그는 역시 바나바와 함께 그가 복음을 전했던 지역을 다시 방문하여 기도와 금식으로 교인 장로 들을 세웠다(행14:23). 바울은 기도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베드로와 요한에게 일어났던 비슷한 일이 바울에게 일어났다. 그 들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다가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고 이 치유의 기적으로 인하여 복음 전도의 역사가 크게 일어났던 것같이 기도의 장소를 찾던 바ㅏ울에게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다. 또한 유럽 선교의 어머니 루디아의 개종은 바울이 안식일에 기도 장소를 찾다가 일어났다(행16:13). 바울은 역시 빌립보에서 어느 날 기도 장소를 찾아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소녀를 치우하는 역사를 체험했다(행16:16-18). 이것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치는 귀신 들린 자들을 해방시 킨 것과 같은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바울이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에도 그는 실라와 함께 기도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행16:25). 이 때 하나님께서는 지진을 일으켜 옥문을 여셨고. 이로 인하여 간수와 그의 온 가족이 구원받는 역사가 있었다(행16: 30-34). 이외에도 바울의 기도에 대한 언급은 더 있다.(행 20:36; 21:5; 22:17; 27:23-24; 28:8) 기도하는 바울로 등장하는 사울은 그의 서신에서 기도하는 사도 로 등장한다. 그는 밤낮으로 기도하는 자요, 항상 기도하는 자였다. 이것은 그가 누가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대로 기도하는 사람이 된 것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기도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자였다. 그가 복음을 전하여 친히 개척한 교회들을 위하여 기도할 뿐만 아니라, 그가 개척하지 않은 교회들을 위해서도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다.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의 서신들 서두에 서 수신자들을 위해서 기도한다고 늘 말하고(롬1:10;엡1:16; 빌 1:4; 골 1:3,9; 살전3:10; 살후 1:11,12). 서신의 끝 부분에서 는 그를 위해서 독자들이 기도해 줄 것을 늘 부탁했다(엡 6:19; 골4:3,4; 살전 5:25; 살후 3:1,2). 그의 기도 내용은 주로 복음의 원만한 전파와 성도들의 영적인 성 숙이었다. 그는 복음의 효율적인 전파를 위해서 기도를 늘 부탁했 다(엡6:19;살후3:1,2). 예수님께서 주기도와 가르침에서 "악한 자 에게서 구해달라" 는 기도를 하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는 하나님 께서 그를 악한 자들에게서 구원받게 해달라고 기도를 부탁했다 (롬15:30,31;살후3:2). 성도들의 물질적인 번영을 구하기보다는 성도들의 영적인 복과 성장을 위해서 주로 기도했다(엡1:18; 3:16-19). 그는 늘 성도들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위해서 기도했다(골1:10-12). 그는 성도들의 믿음이 온전해질 수 있도록 기도했다(살전3:10).
2.베드로의 기도(행9:36-42)
누기는 그의 복음서에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린 사건을 두 번 기록한다. 하나는 나인성에서 상여에 실려가던 과부의 아들을 살 린 사건이다(눅7:11-17).다른 하나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린 사건이다(눅8:49-56). 누가복음에서 두 차례 걸쳐 죽은 자를 살린 사건을 기록한 누가는 사도행전에서도 죽었던 자가 다시 살아난 사건을 두 번 기록한다. 그 하나는 본문에 기록된 대로 선행과 구제를 많이 했던 도르가를 살린 사건이요, 다른 하나는 바울이 그의 설교를 듣다가 3층 창문에서 졸다가 떨어져 죽은 청년을 살린 사건이다(행20:7-12).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에 의해 소녀와 청년이 살아난 것같이 사도 행전에서 베드로와 바울에 의하여 각각 여자와 청년이 살아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러한 기록에서 누가는 베드로와 바울이 각각 예수님을 본받았음을 보여준다. 본문에서 우리의 거관심은 베드로가 기도한 후 욥바에서 병들어 죽었던 도르가를 살린 사건이다. 누가는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딸 을 살린 사건과 베드로가 여인을 살린 사건을 유사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죽은 사람이 있는 현장에 다른 사람들이 근접하도록 허락하 지 않았다. 누가복음에는 예수님께서 베드로, 요한, 야고보와 아이 의 부모만 기적의 현장에 있게 허락했다(눅8:51). 사도행전에서 베드로는 기적의 현장에 한 사람도 허락하지 않고, 그만 홀로 죽은 도르가가 있는 다락방으로 올라갔다(행9:40). 둘째, 베드로는 예수님이 죽은 자를 살릴 때 사용했던 말을 비슷 하게 썼다. 예수님은 소녀를 살릴 때 "아이야, 일어나라" 고 했다 (눅8:54). 이와 같이 베드로도 죽은 과부를 향하여 "다비다야, 일어 나라" 고 했다(행9:40). 누가복음만 예수님께서 소년을 살릴 때 그 현장에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이 있었던 사실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이 두 사건의 연결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본다. 누가는 베드로가 이렇게 예수님을 닮고 본받아 예수님이 하셨던 일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베드로와 예수님의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음을 지적한다. 그것은 베드로가 기도를 한 다음에 도르가를 살리는 기적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누가가 그의 복음서에서 예수님을 철저한 기도의 사람으로 묘사했음에도 불구 하고, 예수님께서 현장에서 기도를 한 다음 기적을 행하신 경우를 한 번도 기록하지 않았다. 동일한 저자가 이 봄문에 현장에서 기도 후에 행한 기적을 묘사함으로 예수님과 베드로 사이에 차이를 두고 있다. 이러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중요한 것은 기도와 기적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기도 이후에 죽은 자가 살아나는 기적이있었다. 이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곳에 있던 성도들과 과부 들이 큰 위로를 받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욥바에 사는 많은 사람들 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역사가 일어났다(행9:42). 기도하는 자에게 기적이 일어나고, 이 기적을 통하여 구원받는 역사가 많은 사람들 에게 일어났다.
오늘날에도 기도 응답으로 하나님께서는 기적의 역사를 일으키신 다. 그렇다고 해서 항상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베드로가 죽은 자 도르가를 다시 살리기 위해서 기도할 때.하나님 께서는 도르가의살아남을 통하여 욥바에 있는 많은 영혼들이 구원 받는 결과를 바라보고 응답하셨다. 기적은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계획과 일치할 때 기도 응답으로 나타난다.
베드로는 기도할때 죽은 시체를 붙들고 기도하지 않았다. 시체를 바라보지도 않았다.기도한 다음에 다비다에게 얼굴을 돌이켜 "일어 나라" 고 말한 것을 누가가 기록한 것으로 보아 베드로는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거 다비다를 살리실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던 것 으로 보인다. 이 확신을 얻은 후에 베드로는 시체를 향하여 명령 할 수 있었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 여인을 살리실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으면 베드로는 무모한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누가의 관심 은 기적이 일어난 사실 자체가 아니라, 기적을 통하여 많은 사람 들이 구원받게 되었다는 사실에 있었다. 그렇게 때문에 일어난 기적의 결과로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될 때 누가는 사도행전의 사건을 기록하였다. **-다음은 "3.고넬료의 기도"(행10:1-5,9)입니다 .(중)에서-** -예수님의 기도로 돌아가자에서-
♡주의 사랑으로 오늘도 행복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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