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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와 선교<하> "4.안디옥 교회의 기도(행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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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옥 교호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본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행13:1-3)
안디옥 교회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인도에 의하여 성령의 이끌림을 받은 예루살렘 교회에 소속됐던 구브로와 구레네 출신의 신자들에 의하여 개척되었다(행11:19). 이들은 스데반의 박해로 흩어진자들 중 일부로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신자들이었다. 그때 같이 흩어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복음을 우대인들에게 전하고 있을 때에 이들은 담대하게 안디옥에 있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이것은 그 당시로선 혁명적인 시도였다. 왜냐하면 아직 사도들과 유대인 신자들이 오순절 성령 강림이 이방인을 위한 선교 시대의 도래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 때, 그들이 당시 많은 신자들의 상상을 초월한 복음 전도를 감행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말로 시대를 한발 앞서가는 신자들이었다. 이들이 안디옥에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때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하여 많은 이방인들이 예수님께 돌아왔다(행 11:21). 그들은 아직 몰랐지만 이때는 이미 예루살렘 교회가 베드로를 통하여 고넬료의 가정에서 이방 선교의 문을 활짝 여신 것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후였다. 예루살렘 교회에 안디옥에서 이방인들의 대대적인 개종이 있었다는 소식이 들어갔을 때 예루살렘 교회는 안디옥 교회를 개척한 자들과 같은 지역 출신의 바나바를 파송하게 되었다(행4:36;11:22).
구브로 출신의 레위인 바나바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인정과 칭찬을 받는 사람이었다. 사도들의 발 앞에 자신의 전답을 팔아 기증하기도 했던 인물로 그의 별명이 권면의 아들이었다(행4:36). 이 권면의 아들 바나바는 안디옥에 파송 받아 하나님의 은혜가 안디옥교회에 있는 것을 목격하고 그의 이름에 잘 어울리게 모든 신자들에게 예수님을 계속적으로 믿도록 권면했다(11:23). 그의 사역의 결과로 안디옥 교회에 획기적인 개종의 역사가 다시 일어났다. 바나바는 수가 엄청나게 증가한 안디옥 교회를 효과적으로 섬기기 위해 다소에 가서 개종한 사울을 찾아 동역하게 되었다(행11:23-26).
본문에 등장하는 안디옥 교회는 놀랍게도 예루살렘 교회를 너무나 많이 닮은 교회였다. 예루살렘 교회에 소속되었던 자들이 교회를 개척했고 예루살렘 교회에서 바나바가 파송을 받아 안디옥 교회를 섬겼기 때문에 예루살렘 교회를 닮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단지 자연스러운 인간적인 현상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이 안디옥 교회에 반영 된 것을 누가가 보여주는 것은 그가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을 모든 교회가 본받아야 할 표준으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안디옥 교회는 어떤 점에서 예루살렘 교회를 본받았는가? 우리는 몇 가지 유사점을 발견한다.
첫째, 팀 사역을 들 수 있다. 예루살렘 교회는 사도 12명을 중심으로 한 팀 사역이었다. 이 팀 사역의 모습이 안디옥 교회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가 이미 앞에서 보았듯이 안디옥 교회 개척자들은 예루살렘에서 파송된 바나바와 팀을 이루어 사역했으며 바나바는 사울과 팀 사역을 했다.
13장에서 우리는 안디옥 교회의 선지자들과 교사들의 역할을 동시에 감당하고 있는 다섯명의 팀 사역자들을 본다. 바나바, 니게르, 루기오, 마나엔과 사울이다. 이 다섯 사람은 모두 출신 배경이 다르다. 바나바는 구브로 출신이고 니게르란 별명을 가진 시므온은 흑인계였으며 루기오는 구레네 출신, 마나엔은 갈릴리와 베레아 지역을 다스렸던 헤롯 안디바와 함께 자란 정치적인 배경을 가졌고, 사울은 다소 출신의 지성인이었다. 이렇게 배경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 팀을 이루어 성공적인 사역을 안디옥에서 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다 성령의 인도를 철저하게 받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더 나가서 예루살렘 교회 사도들의 팀 사역에 영향을 받은 것을 우리는 부인할 수없다.
둘째,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와 같이 가르치고 배우는 교회였다.
우리는 이미 예루살렘 교회가 가르치고 배우는 교회인 사실을 지적했다. 가르치고 배우는 교회이기 때문에 잘 가르칠 수 있는 사역자가 필요해서 안디옥 교회는 사울을 다소에까지 가서 초빙하여 사역하게 한 것이다(행11:26).
우리가 언급한 다섯 명의 팀 사역자들을 모두가 다 선지자요 교사였다. 예루살렘 교회가 사도들의 가르침에 전념했듯이(행2:42). 안디옥 교회도 바나바와 사울의 가르침을 일년 동안 집중적으로 받았다(행11;26). 그 후에도 개종하는 사람들을 모두 다 예외 없이 열심히 배우는 제자가 되었다. 이렇게 철저하게 가르치고 배우는 교회가 처음으로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가르치고 배움으로 교회의 전통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행15:35).
셋째, 안디옥 교회는 기도에 전념했던 예루살렘 교회와 같이 구제에 힘쓰는 교회였다.
예루살렘 교회는 온 형제들이 재물을 서로 나누기 때문에 그들중에 아무도 결핍한 자가 없었다.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가 기근으로 크게 어렵게 되자 안디옥 교회는 온 성도들이 각자 능력에 따라 예루살렘 성도를 구제하는 일을 하였다(행11:29,30).
넷째,안디옥 교회는 기도에 전념했던 예루살렘 교회를 본받았다.
우리는 안디옥 교회가 기도와 금식에 힘쓰는 모습을 2절에서 본다. 2절에 하나님을 섬기며 금식하는 자들은 1절에 언급된 다섯 명의 팀 사역들이다. 이들은 안디옥 교회의 말씀 사역자들이었다. 예루살렘 교회의 말씀 사역자들인 사도들이 기도의 본을 먼저 보였던 것같이 안디옥 교회에서도 목회자들이 먼저 기도로 주님을 섬겼다.
금식기도는 음식과 음료수를 완전히 폐하고 하나님께 절박하게 기도하는 기도를 말한다. 오늘날 한국에서 흔히 있는 것같이 물을 마시는 금식기도는 엄밀한 의미에서 금식기도가 아니다. 성경에는 금식기도 중 음식만 폐하는 것이 아니고 물도 폐하기 때문이다(출 34:28; 신9:9, 18;에 4:16; 마 4:2).
안디옥 교회의 기도는 금식의 형태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예루살렘 교회의 기도를 능가한 다고 볼 수 있다.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교회와 같이 외적인 많은 박해와 시련을 당하지 않았다. 안디옥 교회와 관련하여 어디를 보아도 박해나 시련에 직면한 것을 발견하지 못한다. 이렇게 외적인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안디옥 교회는 금식기도를 하였다. 이것은 예루살렘 교회가 많은 박해와 시련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금식기도 하지 않는 것과 큰 대조를 보인다.
그들이 금식기도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의 성령이 선교하라는 말씀을 주셨다(행13:2). 말씀 사역자들이 단체로 금식기도하고 있을때 성령께서 선교 사역을 위해 바나바와 바울을 따로 구별하라고 말씀 하셨다. 교회가 어떤 외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지 않을 때 그들의 금식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안디옥 교회를 향하신 선교의 비전을 제시하셨다. 그들은 이러한 지시를 받고 즉시 금식을 중단하지 않고 금식과 기도를 계속 더 한 후에 성령의 지시대로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내보냈다. 안디옥 교회 말씀 사역자중에 어쩌면 가장 유능한 목회자들을 성령께서 선교사로 내보내기를 원하셨다. 성령의 이런 지시가 내려졌을 때 안디옥 교회는 놀랐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계속 기도하는 가운데 순종하였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는 이 두 사람을 선교사로 파송하고 그냥 끝나지 않았다.교회는 바울의 선교 사역을 계속적으로 지원하고 후원했다.바울과 바나바는 1차 선교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선교보고를 했다(행 14:26-28). 그들의 2차 선교 사역 역시 안디옥 교회에서 파송받아 진행되었고 , 사역을 마친 후 그들은 안디옥 교회로 다시 돌아왔다(행15:36; 18:22). 바울의 3차 선교 사역 역시 안디옥 교회로부터 시작되었다(행18:23). 금식 기도하는 가운데 안디옥 교회는 성령으로부터 선교 사명을 위임받았고 기도 후에 성령으로 보냄 받아 바울과 바나바는 성공적인 선교 사역을 할 수 있었다.
원래 기도하는 사람으로, 안디옥 교회에서 기도로 목회를 했던 자들이기 때문에 가는 곳 마다 기도를 했고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사역을 잘 감당했다. 기도하는 선교사로 바울과 바나바를 세우라고 하셨던 성령은 그들을 가야 할 선교지로 인도하셨다(행13:4). 때로는 성령께서 어느 지역으로는 가지 못하게 하시고 다른 지역으로 들어가게 하기도 하셨다(행16:7). 이렇게 성령의 인도를 따라 복음을 전파하는 바울과 일행은 기도를 쉬지 않았다(행16:13,16).
우리는 안디옥 교회를 뒤돌아보며 한국 교회의 선교 현주소를 파악하고 재점검해야 할 것이다.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지시와 인도에 따라 국내 목회에 성공적인 유능한 목회자를 선교사로 보냈다. 국내 목회 경험이 없거나 있다 할지라도 성공적인 사역을 하지 못한 자를 선교사로 보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안디옥 교회는 한국 교회같이 신문지상에 광고를 내어 파송할 선교사를 모집하지 않았다. 보낼 선교사는 안디옥 교회에서 사역하던 자들이었다. 파송하는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일꾼을 선교사로 보낼 수 있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안디옥 교회는 선교의 아이디어를 기도하는 가운데 얻었다.이것은 선교의 주권을 성령 하나님께서 가지고 있음을 인저하는 기도이다. 아무런 생각 없이 선교지를 미리 정해놓고 하나님께서 승인해 달라는 기도는 순서가 뒤바뀐 것이다. 마차를 끌어야 할 말을 마차뒤에 놓는 격이다. 안디옥 교회는 교회의 체면이나 명성을 위해서 선교에 참여한 것이 아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에 안디옥 교회는 기쁘게 순종했다. 한국 교회는 단독 선교사 파송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교회가 단독으로 선교사를 파송하지 않으면 선교가 아니라는 생각, 하나님께서 영광을 덜 받으신다는 생각, 교회의 체면이 서지 않느다는 생각은 모두가 주객이 전도된 사고에서 나온 것이다. 이것은 교회가 성령의 도구라는 사실을 망각한 데서 빚어지는 결과이다.
교회가 성령의 도구 역할을 바로 감당하기 위해서 기고에 전념할 때, 성령께서 교회가 가야 할 방향과 해야 할 일을 주권적으로 인도하고 지시한다. 이때 교회는 기꺼이 따라가야 한다. 이것이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이요, 안디옥 교회의 모습이었다.기도를 많이하는 한국 교회는 진정으로 교회를 향한 성령의 주권적인 지시와 인도를 받아들여야 한다.
***-다음은 "예수님의 구속 사역과 기도-요한의 관점에서" 입니다 .(상)에서 뵙겠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로 돌아가자에서-
♡주의 사랑으로 오늘도 행복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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