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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구속 사역과 기도-요한의 관점에서

에바다. 2015. 5. 19. 16:06



예수님의 구속 사역과 기도-요한의 관점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구원 성취가 가져오는 은혜의 풍성함에 관하여 다양하게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기도에 가져다준 엄청난 결과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필자는 여기서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의 구속 사역은 기도 장소인 '건물 성전' 이 기도를 하는 '사람 성전'이 되게 하신 대 사건임을 밝히고자 한다.


우리는 바른 이해를 위해서 먼저 구약에서 성전과 기도의 관계를 살펴보고, 요한복음을 중심으로 이 글을 전개하고자 한다.


1.구약의 성전과 기도


구약에서 모든 기도는 성전에서 혹은 성전을 향하여 드려졌다. 구약은 여러 곳에서 이 점을 분명하게 지적했다. 그중 솔로몬의 성전봉헌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과 관련된 구절들을 열거한다.


한 사람이나 혹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다 각각 자기의 마음에 재앙과 고통을 깨닫고 이 전을 향하여 손을 펴고 무슨 기도나 무슨 간구를 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며 사유하시되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오니 그 모든 행위대로 갚으시옵소서 주만 홀로 인생의 마음을 아심이니이다(대하6:29-30)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이는 내가 이미 이 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으로 여기 영영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 있으리라(대하7:14-16)


위의 구절에서와 같이, 성전에서 혹은 멀리서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는 것은 구약에서 기도의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다니엘이 예루살렘 성전이 소화된 후에도 예루살렘을 향햐여 달린 창문을 열고 기도한 것은 성전과 기도의 관계를 잘 나타낸다(단6:11).


성전과 기도가 이렇게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전이 기도의 집으로 불린 것은 당연하다(사56:6,7)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 당시 백성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컫는 하나님의 성전을 "도적의 굴혈"로 만든다고 탄식하고 책망했다(렘7:11).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은혜와 긍휼을 구하는 것이 기도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두신 유일한 장소인 성전과 기도를 연결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성전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거처 혹은 장소(신12:11;14:23;16:2,6;삼하7:13;왕상5:5;대상22:7,8;시편74:7)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두신 장소이다(신12:5,21;렘7:11,14;32:34).


이거룩한 거처에 이방신들의 제단이 왕들에 의하여 세워지고 그들의 이름이 일컬어질 때, 하나님의 이름은 더럽혀지며 그의 처소 역시 더렵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 구약의 비극적 역사의 단면이다(왕하16:12;21:4-7;대하28:24;29:18). 성전의 부패는 결국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의 부패를 가져왔다.


2.예수님의 성전 청결 사건


예수님의 성전 청결 사건은 네 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공관복음서와 요한복음 사이에 차이는 성전 청결이 공관복음서에는 예수님의 사역 마지막 주간에 등장하는 반면,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사역 초기에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점에 대하여 속시원한 대답을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요한이 성전 청결 사건을 그의 복음서 마지막 부분에 기록하지 않고 그의 복음서 앞 부분에 기록한 것은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으리라는 추측이다. 요한은 공관복음서 기자들과는 달리 예수님의 전 사역을 새로운 성전 건축이라는 관점에서 제시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요2:18-21).


외관상으로 볼 때 예수님의 성전 청결 사건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성전을 회복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요한복음 2장 16절에 "내 아버지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 는 말씀은 이러한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좀더 깊이 생각해 보면, 예수님의 의도는 외적인 성전을 회복시키는 것이 아님을 금방 알 수 있다. 요한복음 2장 20,21절이 이 사실을 잘 지적한다.


예수님의 성전 청결은 엄밀한 의미에서 성전 청결이 아니라 기존의 성전 질서를 훼방하는 성전 파괴의 행위이다. 예수님의 성전 청결 사건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전을 위한 열심으로 그가 이로 인하여 죽임을 당하게 될 뿐만 아니라 그 결과 삼일 후 그의 부활로 말미암아 새로운 성전을 세우실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그가 성전에서 소란을 피운 권세가 무엇이냐고 물을 때에 자신의 몸을 가르켜 "이 성전을 헐라 그리하면 내가 제 삼일에 일으키리라" 고 말했던 것이다(요2:17,19).


예수님의 성전 청결 사건은 예수님의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성전이 세워질 것을 예고하는 사건이다. 김세윤 교수가 지적한 것같이 이것은 더 나가서 새 성전 건축을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도록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분노를 촉발 혹은 격발한 사건이다. 예수님은 공관복음의 기록에 따르면, 성전 청결 사건 때문에 결과적으로 체포되었고 유대 법정에서 성전을 훼방했다는 죄목으로 신문을 받았다(막14:57,58).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이 새 성전의 건립을 위한 것이기에 아무런 변명이나 대꾸를 하지 않았다.


우리는 기도와 성전의 관계를 생각한다. 그런데 방금 본 요한의 성전 청결 기록에는 이 둘의 관계가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음에 놀란다. 분명히 공관복음에는 예수님의 성전 사건과 관련하여 구약의 관점을 잘 반영하는 성전과 기도가 연결되어 나오기 때문이다(마21:13;막11:17;눅19:46). 그러나 요한은 요한복음 14-16장에 서 성전과 기도의 관계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크고 놀랄것은 없다. 이 점에 대해서는 곧 우리가 생각하게 될 것이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에수님의 전 사역은 하나님의 새 성전 건축을 위한 것이라는 요한의 강조점이다.


예수님이 공 사역에 나타나는 열심은 새 성전을 위한 열심으로 이 열심이 그를 죽음으로 가게했다(요2:17). 이 새 성전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건축될 것이기에 이것은 돌로 이루어진 건물 성전이 아니라, 그의 백성 곧 사람 성전이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를 기정 사실화 했기 때문에 장소성을 초월한 새로은 예배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수가성 여인에게 지적했던 것이다(요4:20,21). 예배의 장소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근본적인 이유는 예수님께서 이룩하실 십자가 부활 사건으로 말미암아 장소를 초월한 새 예배, 곧 성령과 진리로 예배, 곧 성령과 진리로 예배 드리는 때가 도래할 것이기 때문이다(요4:24).


3. 예수님의 십자가의 새 성전


우리는 흔히 요한복음 14-16장의 초점을 예수님의 가심과 성령의 오심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요한복음 14-16장의 주된 가르침은 예수님의 가심, 곧 십자가의 영광으로 시작되어 승천, 높아지심으로 완성되는 구원의 대 사건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비로소 그를 믿는 자들에게 주어질 것을 가르치고 있다. 에수님이 가시고 성령이 오심으로 일어날 사건을 크게 세가지로 말하면, 제자들이 새 성전이 된다는 것, 성전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게 된다는 것 또한 기도를 통해서 큰 일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세가지를 하나씩 생각해 보자.


① 십자가 부활과 새 성전 건축
예수님의 가심으로 성령이 신자들에게 오신 것이 요한복음 14-16장의 대 명제라면, 이것은 예수님의 가심이 그의 백성을 성전되게 하는 사건임을 암시한다. 요한복음 14장을 주목해 보면,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가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거처가 더 이상 건물이 아닌 사람 곧 하나님의 백성 안에 지어짐을 발견할 수 있다(요14:2,23).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처소)이 많도다" (요14:2)는 말씀에서 처소는 죽어서 혹은 주님이 재림할 때 가게 될 천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구속 사건으로 세워질 사람 성전을 가르킨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백성이란 하나님의 거처 곧 새 성전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해를 지지하는 것은 먼저 '내 아버지의 집' 이란 표현은 천국을 가리키지 않고 성전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또한 2절에 사용된 단어 '거처'(모네:mone)는 신약성경에서 단 2번 사용되었다. 바로 2절과 23절이다. 23절이 2절에 사용된 '거처' 의 의미를 밝혀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3절은 분명하게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 사건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거처가 되는 것을 말한다. 23절은 예수님의 말씀을 지킴으로 그를 사랑하는 자를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의 '거처'(모네:mone)로 삼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우리를 하나님의 거처 곧 성전으로 삼는 구원의 대 사건이다. 예수님의 구원 성취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으니 성전인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시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가 가야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리라" 했다. 영광의 구름 모양으로 성막에뿐만 아니라 (출40:34) 솔로몬의 성전 안에 머물러 있던(왕상8:10,11) 성령이 하나님의 참 거처이신 예수님의 속에 머물러 계셨고(요1:14;3:34). 결국에는 십자가 부활의 대 사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 속에 거하게 되심을 말한다.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의 사건은 하나님의 백성을 성령이 거하실 거처 곧 새 성전으로 삼으신 사건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14장의 처소 이해는 14-16장의 주제와 일치한다. 우리가 예수님의 가시므로 새 성전이 되지 않았다면 왜 성령이 우리게 와서 영원히 우리 속에 거하셔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요14:16.17).


② 새 성전과 기도
요한 복음 14-16장의 또 다른 중요한 가르침은 성전된 하나님의 새 백성의 기도이다.우리는 이미 구약에서 성전이 기도의 장소 혹은 기도의 적절한 방향으로 역할을 한 것을 보았다. 이제 신약에 와서 예수님의구속 사건으로 말미암아 신자는 하나님의 새 성전이 되었다. 그런데 이 성전의 바른 역할이 기도라는 사실을 요한이 14-16장에서 잘 부각시키고 있다.


요한복음 14장에는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가는 사건과 기도와 연결되어 있다(요14:12-14). 더욱 중요한 것은 14-16장에서 요한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무엇이든지 구할 것을 세번이나 언급한 것을 기록한 것이다(요14:12-14;15:7,8,16:22-25). 왜냐하면 요한복음 14장은 이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에 대하여 말씀한 것을 요한은 한번도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4장 이전까지의 상황을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은 시기" 로 볼수 있다(요16:24).


요한목음 14-16장에서 네 가지가 함께 연결되었다. 예수님이 아버지께 가는 사건(십자가,부활,승천), 성령이 오심, 우리가 하나님의 거처 곧 성전이 됨 그리고 기도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가 성령을 받게 되었고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고로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다. 성전 된 우리 속에 계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이 우리 속에 거하시게 되었다(요14:23).


이렇게 성전 된 우리는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그것은 기도이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무엇이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고 주님이 기뻐하는 열매를 맺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하신 일은 물론 예수님이 하신 일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요14:12-14). 이제 믿는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의 구속 성취로 말미암아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거처)이 되었기 때문에 기도의 장소를 찾아서 가야 할 사람이 아니라 기도하는 인격적인 장소이다. 기도하는 거처와 성전이다. 다시 말해서 결어다니는 기도하는 집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일을 통해서만 새 성전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하나님의 새 백성에게 기도는 선택이 아니라 성전된 특권이요 이 특권에서 나오는 의무요 가장 우선 순위를 가져야 할 신성한 의무이다. 그리스도의 뜻을 이루는 일은 성전 된 신자의 기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③ 기도와 예수님의 사역
예수님은 요한 복음 14장 12절에서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더 큰 것도 하리라"는 놀라운 말씀을 한다. 어떻게 신자가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이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 승리하시고 승천하시는 구원의 대 사건 때문에 그를 믿는 자들은 예수님이 지상에서 하신 일을 할 수 있고, 그가 하신 일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 이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제자들이 예수님을 닮을 수 있고 예수님이 하신 일 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 승리, 승천의 공로 때문이다.


예수님이 하신 일들을 하고 그보다 더 큰 일을 하는 것과 관련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기도이다(요14:13). 예수님께서 구원을 완성하셨기 때문에 믿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동적으로 예수님이 하신 일들을 하고, 그보다 더 큰 일들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많은 신자들을 보지만 주님보다 더 큰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오직 기도에 전념하는 신자만이 이런 일들을 감당할 수 있다.


사도행전은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하고 그보다 더 큰 일을 한 사람들의 기록으로 가득하다. 기도는 에수님의 십자가 부활, 높아지심으로 성취된 구원의 은택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하신 일은 물론 그가 하신 일보다 더 큰 일을 하게 하는 하나님이 주신 최상의 도구이다. 기도를 통해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은 기도 자체의 만능성 혹은 기도가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도구이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이 친히 기도를 통해 역사하시기 때문이다(요14:13). 예수님께서 친히기도 응답을 시행하심으로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하신 일은 물론 그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예수님이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구속 사건과 기도의 관계를 요약해 보자. 예수님의 구속 사건은 기도의 장소로서 건물 성전 시대를 마감하고 신자 성전 시대를 전환시킨 대 역사이다. 이제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택으로 말미암아 성령이 거하시는 전으로서 옮겨다니는 기도하는 성전이 되었다. 성전 된 신자의 특권과 의무가 기도이다.


높아지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기도를 통하여 지상에서 신자들은 예수님이 지상에서 하셨던 일뿐만 아니라 그가 하신 것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 우리의 하나님 거처 됨, 성령의 거하심,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예수님의 기도 응답, 이것들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복된 현실이다. 오늘날 자기 상실의 시대에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 된 정체를 다시 확인하고 바른 기도생활을 통해서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간절한 뜻을 이루어 드려야 할 것이다. 예수님의 피와 땀으로 성전 된 복된 정체가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졌다면 이제 우리는 바른 기도의 땀으로 주님의 일을 효과적으로 이 땅에서 실현하는 제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은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의 중보기도" 입니다 .-**-**


-예수님의 기도로 돌아가자에서-


♡주의 사랑으로 오늘도 행복하십시요♡